미산의 자가 수필

소나무의 기상

새밀 2013. 1. 21. 07:19

  

 

소나무의 기상/미산 윤의섭

 

 

소나무가 민족의 사랑을 받으며 내려온 그 유서깊은 내력은 무엇일까?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받는 나무일까?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고대의 유명한 산수화가가 남긴 필법기에 "어느 아름드리

소나무를 일천만번 그려보니 비로소 그 진 眞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였다"는 고사가 있다.

 

여름의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섞여 있어 눈에 잘 두드러지지 않으나 큰 추위가 찾아와 눈 덮인 설산

에서는 홀로 푸름을 비로소 나타 낸다. 호랑이 가죽 같은 줄기 무늬의 신비스러움은 살아 꿈틀거리

듯이 구부림의 송혼 松魂을 감싸고 있다. 소나무를 보면 밑 줄기를 떠 받들고 있는 두두러진 뿌리,

용곡 龍曲의 힘찬 기저 基底볼수 있다.

소나무 줄기를 보면 곧음이 장쾌하게 시작하다가 문득 구불어진 곡선이 쓸어질 듯 휘어지고, 구비

돌아 감기 듯 기묘한 세를 나타낸다.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는 모든나무가 위로 솟는 것과 달리

한결같이 아래로 축축 느러지니 하늘에 대하여 땅으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극치를 이룬다.

붉은색 용 비늘갑으로 줄기의 수피를 덮어 나갔고. 오래된 껍질의 문양이 갈라진 듯 덮어 싸여 힘

찬 기세로 붙어 있다.

 

세상을 가를 듯 바늘같이 예리한 솔 이파리의 푸른 색조는 백설을 정련하여 씻어낸 진 眞의 푸름이

아닌가? 검붉은 송피의 아랫도리를 떠받치고 잇는 줄기의 븕은 색조는 세상의 오염을 밤새도록

빨아낸 선 善의 붉음이 아닌가? 흰눈을 쓰고 있는 머리 숙인 가지는 美의 겸손인가? 

눈 보라가 세찬 고난에서 불굴의 기세와 우아하고 고매한 품격이 풍기는 미학이 아닌가?

 

인생이 늙으면 쇠잔한 형상을 하는것과 달리 년륜을 더할수록 그 특징이 두두러지며 품위가 높아

지고 기세가 천년을 간다. 곧은 듯 구불구불 줄기의 정직과 포용 그 기상이 천년을 지키는 민족혼이

아닌가? 우리민족이 곳고 꿋꿋한 마음의 뿌리는 이러한 풍토와 자연의 성정에서 얻어진 것이 아날까?

 

감상자의 눈을 반하게 하는 소나무의 모양은 내공이 깊어지면 송령 松靈에 빶어 들기도 한다.

소나무 기상의 백미는 설한풍 거센 중에 잠간 고요하면 운해와 연무가 번갈아 지나가고 산 짐승이

외출 할 즈음에 송기 松氣를 뿜어 내는데 마치 호랑이 눈 빛 같은 광채를 풍긴다.

 

봄이오면 만물이 생동하는 꽃과 잎의 찬란하게 전개하고, 금수강산의 화려함을 발산하는데 봄의

소나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새로나온 가지는 수양버들 같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송화의 수분이

이루어진 후에는 금빛 꽃가루를 주위에 뿌리는데 그 흔적이 마을까지 내려온다.

산으로 이어진 오솔길에는 연한 황금비단을 깔아 놓은 듯이 향기로운 비단길이 생긴다.

꽃다운 젊은이의 사랑의 미로美路가 펼져지고, 사랑의 요람으로 대자연의 웅휘한 연극의 막을 올린다.

교향곡 봄의 찬가지휘하는 주이공이다.


신령스러움이 여기저기에서 비친다는 오대산 눈속의  솔 숲은 한겨울임에도 푸름 짓튼 봄의 빛갈을

하고 있어 나그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소백산의 이곳 저곳 계곡마다  들어 찬 금강송을 보노라면 산의 신들이 가꾸어온 신송 神松이 아닌가 

눈을 의심하며 감흥에 젖는데 한참을 지나야 만 비로소 제정신이 든다.

 

소나무는 호랑이와 함께 백두대간의 주인공이였다. 150여 년전 만에해도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호랑

이 포효소리가 들리는 금수강산이었고, 마을마다 소나무와 호랑이산신 山神 토템삼았고,

단합과 안녕의 수호신으로 토착화 하였다.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에 전해오는 사적과 명소에는 어김없이 소나무의 기상과 운치, 그리고,

솔 바람 솔 향기를 풍기도록 심어저 있는 수호림이다. 

 

조선 조 어느 한성판윤이 조회에 나가 임금에게 말하기를 "민가에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소나무

죽인다"고 하니, 버럭 화를 내고 파직시켰다는 임금의 참 뜻이 서늘 함을 느낀다.

소나무의 아끼는 뜻은 치산과 민생의 이용가치는 물론이요, 흉년이 들어 굶어 죽게 되었을 때의 구급

으로 이용하는 것은 백성이 다 아는데, 지도자가 아직도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느냐? 

이는 지금도 우리민족의 내면에 새겨저 있는 얼의 하나이다.

 

어디서 오는지 알수 없는 바람은 솔잎 사이사이 솔향을 얻으려는 듯 다투어 머물 듯 영묘한 기운을 품

으며 어느 때는 솔솔 흘러나오고 어느때는 상쾌한 솔바람이 되어 주위에 뿌린다.

  

비탈소나무의 불안한 줄기는 배흘림을 버팀삼아 서 있고, 바위 틈의 소나무 구부러진 줄기는 모양

이 애절하고 부드러우며 구부림이 바위와 허공을 번갈아 배려하듯 기묘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 줄기의 미묘한 형상의 진수를 보고 만들어진 것이 서예에서 말하는 초서 草書가 이닌가?

문화예술인의 진 眞에 대한 사유의 진화를 도모함에 소나무의 형상을 끊임없이 벳겨 낸것은 아닐까?

 

첩첩산중의 소나무숲을 들어가면 솔의 정기가 자욱하여 선경에 있는 듯이 황홀감을 느낀다.

영혼에 묻은 때를 씻어내는 치유의 감정을 갖게 되니 고독과 고요의 절정이 아닐가?

자연친화, 공생의 정신을 중시하는 미래의 문화예술, 미학의 주인공으로 소나무는 영원한 친구가

아닐까? 푸른하늘로 싣고 가는 우리의 힘이 솟는 미래를 생각하며,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