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에 달라지는 인생관/미산 윤의섭
인생관에 대하여 동양에서는 일직이 인류의 추앙을 받는 성인 공자가 이르기를 30세에 이립 而立, 즉, 인생의 뜻을 확고하게 세워 세상에 나간다고 하였다. 또 60세에 이르면 이순 耳順, 즉 남의 말을 들으면 그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 60대를 기 耆라 하여 남을 지시하고 부리는 세대이고, 집안에서는 회갑연을 베풀어 인생을 마감하는 의례로 여겼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생 수명이 60대를 넘기기 어려웠고 70세에 이르는 경우는 고희 古稀라하여 매우 희소하였다.
이러한 인류의 일생을 관조하면 세상에 나아가 역량을 발휘하는 기간이 30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30년을 1세대로 보는 것이다. 역사를 회고하면 한 시대를 변혁하는 기간을 보면 대개 30여 년이 걸렸음을 알 수 있고 한나라의 정치가의 특출한 활동이 30여 년의 기간을 두고 일어났을 때 확고한 체제 변화가 이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개인은 이 30년의 발자취가 사후 후세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그 결과가 영예로울 것인지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을 것인지를 저울질하며 노력하게 되는데, 인간의 능력은 한계성이 있어 충분한 여유를 갖고 마무리하지 못하고 60대에 운명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고인의 잘 잘못된 발자취에 대하여 본인 생존 시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준엄한 역사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행적의 공보다 과의 폐해가 후세에 체감이 크기 때문에 논란이 많아 지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2천 년대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이 백세에 이르는 장수시대로 바뀌며 인생관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전자의 "세상에 나가는 30년 시기"에 추가 하여 30년을 더 살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경우 후기 30년의 신 노년기를 지냄에 있어 마치, 옛날에는 저승의 시기였던 것이, 이승의 세계에 있게 되는 것인데 전기 30년의 후과를 스스로 보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때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이러한 과제에 대하여 새로운 학문적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생 60에서 일생 100의 불일치를 획기적으로 변형 대응할 방책이 되는 신도덕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당면한 정치가나 지식 재산 기득권자는 30년의 후기 신노년기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를 준비해야 하고, 과거식으로 60대에 죽기 전에 조급하게 서둘렀던 한계성을 풀고 다음 세대에 상속할 정신적 물질적 소유의 이양 작업을 신도덕성에 맞춰야 할 것이다. 이상은 높되 실천의 한계를 겸허하게 하여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고집을 버리는 등, 낮은 자세(노인의 작은 일거리)의 이행을 절실하게 요구한다. 과거 60~90대의 저승 시기와 전혀 다른 이승의 눈으로 보게 될 영예롭고 불편하지 않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여 준비한 신노년의 30년은 즐거울 것이고 반대로 순조로운 이양을 하지 못한 노년은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불편해하는 여생을 보낼지 모른다. 어느 90대의 원로가 뉴스에 나와서 회고담을 할 때 그 옛날의 자신의 행적의 떳떳함과 그렇지 못하였음을 표현하는 착잡한 얼굴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더구나 고령의 기득권자나 부유층이 사회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연에 귀의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불안하게 여생을 맞고 있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신 노년기에 장수하는 사람이 그의 지난 행적을 재평가하는 것을 보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아 지지 않을까? 그것은 지식 정보화 사회가 장수시대에 맞는 도덕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 되어 영예로움과 불명예를 판별하는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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