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은 美에 맞선 정의로운 결정"…中의 왜곡된 역사인식
입력2019.07.19
안세영의 중국 바로 읽기
(2)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과 '한반도 징크스'
(2)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과 '한반도 징크스'
1951년 ‘1·4후퇴’ 당시 서울로 진격해 광화문 중앙청 건물을 점령한 중공군이 환호하고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승리한 상감령 전투 때처럼 미국에 맞서겠다.” 지난 6월 미국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이 격분해 내뱉은 말이다.
“미 제국주의자의 침략에 항거하고 북조선을 도운 정의로운 항미원조 전쟁에서 승리해 국위를 떨쳤다.” 2017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 격려사다. 중국몽의 최일선에서 뛰는 화웨이 최고경영자와 강군몽(强軍夢)을 꿈꾸는 시 주석의 놀라운(!) 역사 인식이다. 중국군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침략자 미군과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고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 걸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지도자지만 이들 또한 어린 시절부터 공산당으로부터 6·25전쟁에 대해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역사적 진실을 말한다고 확신할 뿐이다. 이 같은 잘못은 중국공산당의 역사 왜곡 때문이기도 하지만, 앨러스테어 존스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중국 예외주의’ 탓이 크다. (‘중국 예외주의가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 《하버드대 중국 특강, The China Questions》 중, 2018년)
중국 사회의 뿌리 깊은 믿음은 ‘중국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시 주석도 “천성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인의 핏속에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과장된 표현까지 했다. 이 같은 생각은 천하를 문명세계인 ‘중원’과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한 ‘비문명의 오랑캐’로 이분하는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다. 그런데 존스턴 교수에 따르면 이는 국제사회에서 두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첫째, 중국인 스스로 자국 예외주의 함정에 빠지면 빠질수록 외국을 위협적 존재로 인식해 더 강경한 대외정책을 펼치고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 예외주의는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외국과 충돌할 경우 이는 외국이 먼저 시작한 일이고 중국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뻔뻔스러운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중국 공산당 중앙공무실 제9호 문서는 시민사회, 입헌정치 등과 같은 7대 금기사항의 하나로 공산당이 만든 역사를 비판하는 ‘역사 니힐리즘(nihilism)’을 들고, 이를 금지했다. 1979년 20만 병력으로 베트남을 침공하고도 덩샤오핑은 “조그만 나라가 버릇없이 굴어 교훈을 주려고 자위적 반격을 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데 대한 죄의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중국에서 역사 기술은 공산당의 철저한 심사를 거치기에 공산당이 한 일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용인되지 않는다. (《Why China Never Be Great》, K Lacroix & D Marriot, 2010년) 그러니 공산당이 벌인 전쟁은 모두 정의로운 것이고 항상 승리한다.
역사 왜곡은 항미원조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국영방송에서 마오쩌둥의 영웅적 항일운동이 연일 방영되고 매년 9월 3일 톈안먼광장에서 전승절 행사를 요란하게 한다. 하지만 일제가 중국 대륙을 짓밟을 때 연합군의 일원으로 일본군과 전면에서 싸운 것은 장제스가 이끈 국민당군이지, 마오의 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두 군대가 싸울 때 마오는 어부지리를 취하며 치밀하게 공산 세력을 확장했다.
중공군과 싸운 6·25전쟁
1949년 스탈린과 김일성이 남침 계획을 세울 때 ‘미군이 철수해 거의 무방비 상태인 남조선을 막강한 소련제 탱크로 밀어붙여 보름 만에 통일하겠다’는 김일성의 호언장담에 마오의 귀가 솔깃했다. 1949년 7월부터 1950년 1월 사이에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속해 있던 조선의용군 세 개 사단 병력 약 6만 명을 ‘군편제’ 그대로 북한에 줬다. 즉 그들의 무기와 지휘체계를 그대로 갖고 소속만 중공군에서 북한군으로 바뀐 것이다. 전투 경험이 많은 이들 세 개 사단이 주력이 돼 우리의 주 방어선을 뚫고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중국 자료에 의하면 연인원 120만 명 정도가 압록강을 건넜다가 20만 명이 되돌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국군이나 미군의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겨울 내복과 식량을 제대로 지급 안 해 혹한기에 얼어 죽고 아사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영하 30도에 짚신을 신고 싸웠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많은 숫자가 국민당군으로, 쓰촨성 등에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부대 단위로 집단 투항해 공산군에 편입된 군인들이란 것이다. 마오가 얼마나 잔혹한 지도자인가. 국민당군 출신 병사들은 사상적으로 건전하지 않은 골칫거리였는데, 이들을 한반도에서 싹 정리해 버린 것이다.
붉은 중국의 한반도 징크스
1000년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와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멀게는 임진왜란 때 출병했다가 멸망한 명나라에서 구한말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3000여 청병(淸兵)을 조선 땅에 보낸 청나라까지 모두 그랬다. 특히 구한말에는 조선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에 출병의 명분을 줬고, 이어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
1950년부터 3년간 한반도에서 국군 미군 중공군 등이 뒤섞여 싸웠지만, 참전의 후유증을 가장 오래 겪은 나라는 아마 중국일 것이다. 1950년 11월 유엔에서 침략자로 낙인찍혀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죽의 장막’에 갇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오가 자력갱생이라는 미명 하에 대약진운동을 벌이다가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대참사를 불러왔다. 개방해야 한다는 덩샤오핑 같은 주자파(走資派)와의 권력 투쟁을 위해 1965년부터 10년간 중국을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역사의 가정이지만 만약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만 않았어도 중국은 훨씬 전에 경제개발을 해 어쩌면 지금은 미국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는 존경받는 대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평택에 있는 미군 험프리스기지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 가운데 베이징에 가장 가까운 기지라고 한다. 옛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할 때 미국이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쿠바와 워싱턴DC 간 거리는 1933㎞다. 그런데 평택에서 베이징까지는 986㎞밖에 안 된다. 어떤 중국 지도자는 “평택기지가 중국의 허리에 대검을 겨누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1949년 한반도에서 스스로 나간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 중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항미원조 전쟁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혈맹’인 북조선과도 좋게 헤어지지 못했다. 1956년 8월 연안파가 김일성을 축출하려다 실패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김일성으로서는 정말 아찔한 위기의 순간을 넘겼는데, 당시 북한 땅에 수십만 명의 중공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마오가 자신(김일성)을 쫓아내려 한 연안파를 두둔하고 있는데, 만약 중공군의 무력을 사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철군을 요구하는 평양과 베이징 사이에 심한 입씨름이 오갔다. 1958년 중공군은 철군했다. 물론 북·중 관계는 악화됐고, 이후 북한은 친소(親蘇)로 돌아섰다. 중국 지도자들의 항미원조 전쟁 같은 잘못된 역사인식이 오늘날 중국이 존경받는 세계 패권국가로 도약하는 데 족쇄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쓰며 항미원조 전쟁 대신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이는 중국인이 세계화 측면에서 이 전쟁을 회고하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낸다. 중국인은 그렇게 해야만 한반도,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난제를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한국전쟁》이란 책을 낸 중국 국가 1급 작가 왕수쩡(王樹增)의 말이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양식 있는 중국 지식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중국의 앞날이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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