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가 중국의 일부?…한반도는 단 한 번도 漢化된 적 없었다
입력2019.07.12
안세영의 중국 바로 읽기
(1) 멈출 줄 모르는 中 영토 팽창욕
(1) 멈출 줄 모르는 中 영토 팽창욕
중국이 날이 갈수록 한·중 관계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를 점령한 6·25전쟁을 정의로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미화하고 미·중 정상회담에서 ‘코리아 속국론(!)’을 언급했다. 하지만 한자 중심으로 쓰인 동북아 역사를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리안 세계라는 새 관점에서 조명해보면 중원은 천하의 중심이 아니었고 한반도도 결코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자긍심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신사대주의, 소중화(小中華)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듯이 우리도 ‘신형 한·중 관계’를 당당히 요구해야 상생의 지평을 열어나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코리아’는 중국의 일부(a part of China)였다”
2017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 말이다. 이건 아주 잘못된 역사인식이며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는 외교적 결례다. 그런데 우리는 항의 한번 못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제18차 공산당 전당대회(2012년)에서 시 주석이 밝혔듯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고 있다. 과거 베이징 자금성의 천자가 보기에 고려, 조선은 조공을 바치는 속국에 불과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중국몽’의 환상에 젖은 시 주석도 한국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플로리다 발언이 그냥 얼결에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북한만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한국은 군사동맹으로 미국과 함께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은 중화제국에 있다는 치밀하게 준비한 메시지를 워싱턴에 던진 것이다. 시 주석의 ‘망언’을 거꾸로 해석하면 ‘언젠가 중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고 미국만 몰아내면 한반도는 다시 중화제국의 손아귀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지난 수천 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지난 100년뿐이었다. 그들이 일본제국주의에 짓밟히고 국공내전과 죽의 장막에 갇혔을 때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두 나라 사이에는 묘한 역학관계가 있다. 중국이 약하면 우리가 힘을 키웠고, 강해지면 우리가 위축됐다. 고구려가 랴오둥반도까지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국이 삼국시대, 남북조시대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통일을 이뤄 대당제국을 건설하자 고구려는 무너졌다. 우리가 1960년대 수출주도형 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대륙이 문화혁명이란 대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힘을 키우면 패권국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선량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있을지에 대해 숙명적 결정을 할 것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한 예측이다.(《리콴유가 말하다》, 2015년)
그런데 안타깝게도 베이징은 패권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간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적을 만들고 친구와 멀어지는 방법을 아주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다.” 오드 베스타 미 하버드대 교수의 따끔한 비판이다.(《The China Questions》, 2018년)
독특한 중화제국의 영토팽창 방법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제국, 몽골제국, 대영제국 같은 ‘제국’들은 한때 세계를 호령하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중화제국만이 어떻게 수천 년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총칼로 힘을 키운 이들 제국과 달리 중화제국은 아주 독특한 두 가지 방법으로 끈질기게 영토를 넓혀나가고 주변 민족을 한화(漢化)시켰다. 바로 ‘역사적 종주권’과 ‘한화형(漢化型) 제국주의’다.
역사적 종주권이란 과거 중화제국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조그만 사료라도 있으면 끈질기고 뻔뻔스럽게 잡고 늘어져 결국 자기 영토로 만드는 것이다. 이 논리로 국경을 접한 1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지금 한창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중국 최남단에서 1000㎞ 이상 떨어진 베트남 남쪽 앞바다까지 자기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근거가 당나라 역사에 한자로 쓴 남중국해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나라 땅을 탐내지도 않지만, 조상이 남긴 땅을 남에게 양보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 2018년 6월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을 만났을 때 남중국해 섬들에 대해 시 주석이 한 말이다. 한때 어엿한 독립국이었던 신장 위구르의 동튀르크스탄(1863~1949)과 티베트를 인민해방군이 침공해 자국 영토에 편입한 근거도 청나라 때 자국 영토였다는 역사적 종주권이다.
우리도 중국의 역사적 종주권 주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한말 청군을 이끌고 온 위안스카이 장군은 ‘조선은 중국의 일부이니 속국으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사부(理事府)라는 이름의 관청을 설치했다. 영국, 미국 외교관들은 왕궁에 들어갈 때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위안스카이는 속국의 왕에게 그런 예우를 갖출 필요가 없다며 거드름을 피웠다. 지금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역사전쟁에서 지면 고구려 영토였던 북한 땅이 중국의 회복하지 못한 고토(古土)가 된다.
무서운 ‘한화형(漢化型) 제국주의’.
그 옛날 중국 땅의 주인은 한족(漢族)이 아니었다. 한족은 원래 허난성, 산시성 시안 같은 황허 상류 근처에 모여 살았다. 지금의 베이징 근처나 만주에는 흉노, 선비, 돌궐, 거란, 여진 그리고 양쯔강 남쪽에는 장족, 묘족 등 정말 다양한 민족이 살았다. 그런데 주변 민족들은 오랜 역사를 두고 ‘한화(漢化·Sinofication)’라는 블랙홀에 빠져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중화제국에 흡수돼 버렸다.
한화의 첫 단계는 무력점령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무력으로 점령한 아프리카, 인도차이나의 자원을 약탈하고 경제적 착취에 전념했지만 중국은 한화(漢化)를 위해 조금은 다른 전략을 썼다. 점령 지역에 슬며시 한족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1949년 신장지역에서 한족의 비중은 6%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한족 1000만 명에 위구르인 800만 명으로 역전됐다. 2006년 중국과 티베트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철도가 개통되자,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가 25%에 불과하던 한족 비중이 지금은 절반을 넘었다.
어리숙한 현지인들이 유대인 뺨치는 한족의 상술(商術)을 당할 수가 없다. 소수민족은 자기 땅에서 경제적 약자로 몰락하고 이들 지역은 장기적으로 한화, 즉 중국이 돼가는 것이다. 한화의 마지막 단계는 문화적 점령이다. 위구르, 만주족도 한때 나름 고유문자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문자는 문자경쟁력이 한자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문자 전쟁’에서 패해 고유 문자를 잃고 결국 한자문명권에 편입됐다.
역사를 읽을 줄 알았던 청태조 누르하치는 한족과 만주족이 뒤섞이면 결국 한화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모든 공문서는 반드시 만주어와 한자를 병기하도록 했다. 베이징 자금성에 걸린 현판을 자세히 보면 한자와 만주어가 같이 쓰여 있다. 그런데 어설픈 만주어가 한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만주어는 흔적도 없어지고 청제국 깃발 아래 276년간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만주족은 랴오닝성에서 겨우 소수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유일하게 한화(漢化)되지 않은 한반도
과거 중화사상에 다시 젖어 들어가는 중국은 굽히는 나라는 속국처럼 우습게 보고 거칠게 대하지만, 강하게 나오는 상대에겐 움찔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도자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너무 중국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는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굴종하지 않기 위해선 한자 중심의 역사인식 때문에 만들어진 신사대주의니 소중화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한자(非漢字) 문명의 새로운 역사 틀 속에서 보면 한반도는 한화형 제국주의가 실패한 유일한 지역이다. 중국 군대가 압록강을 넘어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으며, 그 생활력 강한 한족도 한반도에선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글의 문자경쟁력은 대단하며, 특히 정보화시대에는 한자를 앞지른다. 대한민국에는 그들이 섣불리 6·25전쟁에 끼어들어 불러온 세계 최강의 미군이 있다. 이렇게 한·중 관계를 다양한 역사적 접근으로 조명해야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날이 갈수록 패권국가로 치닫는 중국에 강하게 맞설 수 있다.
■안세영 교수 프로필 △1953년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프랑스 팡테옹-소르본대 국제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17회 △산업자원부 국장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대한민국 통상교섭민간자문회의 의장 △現 동북아연구포럼 회장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서강대 명예교수 >
“역사적으로 ‘코리아’는 중국의 일부(a part of China)였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플로리다 발언이 그냥 얼결에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북한만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한국은 군사동맹으로 미국과 함께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은 중화제국에 있다는 치밀하게 준비한 메시지를 워싱턴에 던진 것이다. 시 주석의 ‘망언’을 거꾸로 해석하면 ‘언젠가 중국이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고 미국만 몰아내면 한반도는 다시 중화제국의 손아귀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지난 수천 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지난 100년뿐이었다. 그들이 일본제국주의에 짓밟히고 국공내전과 죽의 장막에 갇혔을 때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두 나라 사이에는 묘한 역학관계가 있다. 중국이 약하면 우리가 힘을 키웠고, 강해지면 우리가 위축됐다. 고구려가 랴오둥반도까지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국이 삼국시대, 남북조시대로 분열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통일을 이뤄 대당제국을 건설하자 고구려는 무너졌다. 우리가 1960년대 수출주도형 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대륙이 문화혁명이란 대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힘을 키우면 패권국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선량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있을지에 대해 숙명적 결정을 할 것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한 예측이다.(《리콴유가 말하다》, 2015년)
그런데 안타깝게도 베이징은 패권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간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적을 만들고 친구와 멀어지는 방법을 아주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다.” 오드 베스타 미 하버드대 교수의 따끔한 비판이다.(《The China Questions》, 2018년)
독특한 중화제국의 영토팽창 방법
한자와 만주어로 쓰인 자금성 현판
역사적 종주권이란 과거 중화제국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조그만 사료라도 있으면 끈질기고 뻔뻔스럽게 잡고 늘어져 결국 자기 영토로 만드는 것이다. 이 논리로 국경을 접한 1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지금 한창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중국 최남단에서 1000㎞ 이상 떨어진 베트남 남쪽 앞바다까지 자기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근거가 당나라 역사에 한자로 쓴 남중국해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나라 땅을 탐내지도 않지만, 조상이 남긴 땅을 남에게 양보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다.” 2018년 6월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을 만났을 때 남중국해 섬들에 대해 시 주석이 한 말이다. 한때 어엿한 독립국이었던 신장 위구르의 동튀르크스탄(1863~1949)과 티베트를 인민해방군이 침공해 자국 영토에 편입한 근거도 청나라 때 자국 영토였다는 역사적 종주권이다.
우리도 중국의 역사적 종주권 주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한말 청군을 이끌고 온 위안스카이 장군은 ‘조선은 중국의 일부이니 속국으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사부(理事府)라는 이름의 관청을 설치했다. 영국, 미국 외교관들은 왕궁에 들어갈 때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위안스카이는 속국의 왕에게 그런 예우를 갖출 필요가 없다며 거드름을 피웠다. 지금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역사전쟁에서 지면 고구려 영토였던 북한 땅이 중국의 회복하지 못한 고토(古土)가 된다.
무서운 ‘한화형(漢化型) 제국주의’.
그 옛날 중국 땅의 주인은 한족(漢族)이 아니었다. 한족은 원래 허난성, 산시성 시안 같은 황허 상류 근처에 모여 살았다. 지금의 베이징 근처나 만주에는 흉노, 선비, 돌궐, 거란, 여진 그리고 양쯔강 남쪽에는 장족, 묘족 등 정말 다양한 민족이 살았다. 그런데 주변 민족들은 오랜 역사를 두고 ‘한화(漢化·Sinofication)’라는 블랙홀에 빠져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중화제국에 흡수돼 버렸다.
한화의 첫 단계는 무력점령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무력으로 점령한 아프리카, 인도차이나의 자원을 약탈하고 경제적 착취에 전념했지만 중국은 한화(漢化)를 위해 조금은 다른 전략을 썼다. 점령 지역에 슬며시 한족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1949년 신장지역에서 한족의 비중은 6%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한족 1000만 명에 위구르인 800만 명으로 역전됐다. 2006년 중국과 티베트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철도가 개통되자,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가 25%에 불과하던 한족 비중이 지금은 절반을 넘었다.
어리숙한 현지인들이 유대인 뺨치는 한족의 상술(商術)을 당할 수가 없다. 소수민족은 자기 땅에서 경제적 약자로 몰락하고 이들 지역은 장기적으로 한화, 즉 중국이 돼가는 것이다. 한화의 마지막 단계는 문화적 점령이다. 위구르, 만주족도 한때 나름 고유문자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문자는 문자경쟁력이 한자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문자 전쟁’에서 패해 고유 문자를 잃고 결국 한자문명권에 편입됐다.
역사를 읽을 줄 알았던 청태조 누르하치는 한족과 만주족이 뒤섞이면 결국 한화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모든 공문서는 반드시 만주어와 한자를 병기하도록 했다. 베이징 자금성에 걸린 현판을 자세히 보면 한자와 만주어가 같이 쓰여 있다. 그런데 어설픈 만주어가 한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만주어는 흔적도 없어지고 청제국 깃발 아래 276년간 중국대륙을 통치하던 만주족은 랴오닝성에서 겨우 소수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유일하게 한화(漢化)되지 않은 한반도
과거 중화사상에 다시 젖어 들어가는 중국은 굽히는 나라는 속국처럼 우습게 보고 거칠게 대하지만, 강하게 나오는 상대에겐 움찔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도자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너무 중국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는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굴종하지 않기 위해선 한자 중심의 역사인식 때문에 만들어진 신사대주의니 소중화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한자(非漢字) 문명의 새로운 역사 틀 속에서 보면 한반도는 한화형 제국주의가 실패한 유일한 지역이다. 중국 군대가 압록강을 넘어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으며, 그 생활력 강한 한족도 한반도에선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글의 문자경쟁력은 대단하며, 특히 정보화시대에는 한자를 앞지른다. 대한민국에는 그들이 섣불리 6·25전쟁에 끼어들어 불러온 세계 최강의 미군이 있다. 이렇게 한·중 관계를 다양한 역사적 접근으로 조명해야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날이 갈수록 패권국가로 치닫는 중국에 강하게 맞설 수 있다.
■안세영 교수 프로필 △1953년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 프랑스 팡테옹-소르본대 국제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17회 △산업자원부 국장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대한민국 통상교섭민간자문회의 의장 △現 동북아연구포럼 회장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서강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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