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조선 문화의 모더니즘

새밀 2020. 1. 23. 10:28

조선 문화의 모더니즘

  • 윤훈열 [정동 동아시아 예술제 조직위원장]
  • 입력 : 2020.01.23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니던 우리 또래들은 어린 시절 `반만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문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말을 생각하면 고구려 벽화나 신라시대의 석굴암과 불상, 고려청자 등이 떠오르면서 왠지 `반만년`과 `찬란한 문화유산`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할 때면 수백 년 전의 유물과 같은 너무 먼 과거의 일로 여겨진다.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근본적으로 망국과 식민에 기인한다. 나라를 빼앗기면서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아닌 일제가 기술했고, 조선을 선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로 정의하면서 침략을 정당화시켰다. 이러한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미적 취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았다. 일제하에서 조선미술사를 기술했던 세키노 다다시는 "삼국시대에 문화는 매우 발달해서 고려시대까지 융성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학을 도입하면서 문약하고 당쟁을 일삼아 나라는 쇠퇴하고 문화는 중국의 모방과 아류에 머물렀다"고 정의했다. 이렇듯 그들에 의해 조선의 문화는 폄하되고 도려내진 채 고려에서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으로 바로 넘어가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이던 1970년대가 되어서도 조선의 미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조선시대에 대한 평가는 야박한 편이다.

고려청자는 중국도 못 만든 상감 기법을 구사했던 당대 최고의 명품으로, 식민지 시절에도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별 무늬나 장식이 없는 밋밋한 조선의 백자는 전혀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화가 김환기(최근 우리 미술품 최초로 100억원 돌파)가 "백자와 목기 등에서 느껴지는 조선의 미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조선의 문화는 앞서간 모더니즘적 감수성을 담고 있었다.

조선의 미술은 간결함과 예스러움에 기초한 최고의 멋을 추구했다. 간결함과 단순함 속에 아름다운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일은 고도의 수련이 요구되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조선의 화가 및 문화 수요자에게 요구되는 기술이었고 핵심 가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벽화나 고려 불화같이 동시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그림을 그렸던 민족이 조선시대에 와서 갑자기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문화의 향유자였던 지배층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고려는 지방 호족들의 나라였던 반면, 조선은 고려의 젊은 유학자인 지식인들이 이성계를 도와 세운 나라로 성리학에 근거한 헌법(경국대전)을 만든 지식인들과 왕이 권력을 분점한 나라였다. 특히 성리학적 가치 속에 엄격한 자기 검열이 요구되었던 이들에게 사치나 화려함은 금기시할 덕목이었기에 이러한 가치가 고스란히 조선 예술에 담겨져 나온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와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당쟁으로 치부되는 패권으로 몰락을 자초하기도 하였지만, 본질을 보자면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성리학적 가치가 훼손되고 권력 독점과 견제와 균형의 전통을 잃으면서 몰락의 길을 갔던 것이다.


문사의 나라 조선. 플라톤이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보았던 철인국가, 즉 학문을 통해 도덕적으로 자기 수련이 된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500년간 지배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다. 이러한 철학적 기초에 고도의 절제된 심미적 가치를 추구했던 우리 조선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이제 선진 서구를 추격하면서 진행된 근대를 지나고 이제 더 이상 서구는 추격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앞날을 그려야 할 지점에 서 있다. 경제선진국을 지나 문화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지금, 외적인 화려함보다 내적 역량을 강조했던 조선의 미의식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동 동아시아 예술제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