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문화의 모더니즘
고려청자는 중국도 못 만든 상감 기법을 구사했던 당대 최고의 명품으로, 식민지 시절에도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별 무늬나 장식이 없는 밋밋한 조선의 백자는 전혀 평가받지 못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화가 김환기(최근 우리 미술품 최초로 100억원 돌파)가 "백자와 목기 등에서 느껴지는 조선의 미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조선의 문화는 앞서간 모더니즘적 감수성을 담고 있었다.
조선의 미술은 간결함과 예스러움에 기초한 최고의 멋을 추구했다. 간결함과 단순함 속에 아름다운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일은 고도의 수련이 요구되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조선의 화가 및 문화 수요자에게 요구되는 기술이었고 핵심 가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벽화나 고려 불화같이 동시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그림을 그렸던 민족이 조선시대에 와서 갑자기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문화의 향유자였던 지배층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고려는 지방 호족들의 나라였던 반면, 조선은 고려의 젊은 유학자인 지식인들이 이성계를 도와 세운 나라로 성리학에 근거한 헌법(경국대전)을 만든 지식인들과 왕이 권력을 분점한 나라였다. 특히 성리학적 가치 속에 엄격한 자기 검열이 요구되었던 이들에게 사치나 화려함은 금기시할 덕목이었기에 이러한 가치가 고스란히 조선 예술에 담겨져 나온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와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당쟁으로 치부되는 패권으로 몰락을 자초하기도 하였지만, 본질을 보자면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성리학적 가치가 훼손되고 권력 독점과 견제와 균형의 전통을 잃으면서 몰락의 길을 갔던 것이다.
문사의 나라 조선. 플라톤이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보았던 철인국가, 즉 학문을 통해 도덕적으로 자기 수련이 된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500년간 지배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다. 이러한 철학적 기초에 고도의 절제된 심미적 가치를 추구했던 우리 조선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이제 선진 서구를 추격하면서 진행된 근대를 지나고 이제 더 이상 서구는 추격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앞날을 그려야 할 지점에 서 있다. 경제선진국을 지나 문화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모색하는 지금, 외적인 화려함보다 내적 역량을 강조했던 조선의 미의식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동 동아시아 예술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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