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류 역사는 길게 400만년에 달한다. 영겁을 지나며 인간이 딛고 선 땅에는 기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보물 사냥이든 호기심이든 우연이든, 도처에 흩어지거나 묻힌 시간의 퍼즐을 삽자루 하나 달랑 들고 파내어 꿰맞추기 시작한 이래로, 인간이 땅속에서 발견했던 건 늘 인간 자신이었다.
지중해의 귀퉁이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학문(學文)으로 자리 잡은 고고학 250년사를 다루는 책이다. 2000년 전 유물 위에서 파티를 열어 소유를 과시하던 수집가의 무모함, 무턱대고 왕가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몽땅 들어냈던 괴짜의 저돌성, 값나가는 물건을 훔쳐 돈 몇 푼에 귀족에게 팔아넘긴 시정잡배의 사익 추구가 고고학이 아니라고 이 책은 선언한다. 고고학은 인간의 기원을 밝히려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학문이며 인간을 들여다보는 사유의 절정이다. 아래 두 사례는 울림이 크다.

#2. 미국 여행가이자 변호사였던 존 스티븐스는 1839년 중앙아메리카 외교관직을 얻어냈다. 영국 화가 프레더릭 캐더우드와 함께 코판으로 가는 `폐허 여행`이 그의 진짜 목표였다. 노새가 진흙탕에 빠지는 우여곡절 끝에 오두막집이 무너져가는 곳에 도착하니 도시가 선명했다. 코판의 중앙 광장엔 돌기둥이 서 있었다. 스티븐스와 캐더우드는 도시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측량했고 관찰했을 뿐, 발굴하지는 않았다. 둘은 팔렌케라는 마을에도 도착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서기 600년대 파칼 왕이 지배했던 거대한 신전이었다. 현대인은 그곳의 이름을 이제 `마야`라고 부른다. 마야 문명의 첫 근대식 지도를 두 미국인의 집념이 그려낸 것이다. 두 탐험가의 스케치는 단지 이끼 가득한 옛 마을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망각의 덤불에 잠든 문명을 묘사하는 행위였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고고학은 변화해왔다. 전 세계에 몇백 명에 불과했던 고고학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창세기의 시간을 소급해 추산한 6000년 역사보다 인간은 훨씬 길고 긴 시간을 지나쳤음도 고고학은 밝혀냈다.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고고학계에 이제 거트루드 벨과 해리엇 보이드 호스와 같은 여성 고고학자들도 등장했다. 성서에 기록된 니네베를 이라크 북부에서 찾아내거나 하루에 궁전을 두 개나 발견하거나 동아프리카를 평생 헤매며 최초의 인류를 찾아헤맨 고고학자의 일생에 걸친 호기심을 이해하려다 보면 우리 주변의 이 땅이 갑갑해진다.
비발굴고고학이 발전하며 고고학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했다고 저자는 일깨운다. `리모트센싱`이라는 기술로 땅속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발굴 자체가 불필요해졌단다. DNA나 동위원소 분석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