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반일 종족주의와 동북공정

새밀 2019. 9. 20. 09:46

반일 종족주의와 동북공정


`반일 종족주의` 논란이 여전히 거세다. 출판계 위기를 논할 만큼 책이 안 팔리는 요즘, 이 사회과학 역사서가 한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1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던진 파문의 넓이를 가늠할 만하다. 추측건대 그 내용에 열광하기보다 욕하며 읽은 사람이 대부분 아니었을까.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한 조국 법무부 장관의 평가가 책 판매에 톡톡히 일조했을 법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논쟁이 이어지고, 공저자 6인의 신상과 이들의 행태에 대한 보도와 분석도 줄을 잇는다.
놀라운 것은 일부 식자층에서도 이들 주장에 대해 일견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한민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종족주의라 부를 만큼 심각하니 그 대안으로 시민의식과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룩한 말이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한 근거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당화한다. 일본 식민지배 35년간의 수탈과 착취, 억압에 대한 통념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 교육이 지나치게 감정주의적이고 선동적으로 반일(反日)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기시감. 그렇다. 일본 극우 세력, 혐한파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중국은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자 일제 침략기 상하이에만 160곳 넘는 군 위안소가 운영됐다며 역사적 도전을 중단하라고 일침을 놨다.

그런데 우리가 외면하고 있지만 역사 왜곡은 중국도 일본에 못지않다. 우리가 지금 일제 침략이라는 공통분모로 중국과 연대하고 있긴 하지만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는 중국도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동북3성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된 동북공정은 사실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을 우려하는 중국이 조선족 이탈과 국경선 분쟁을 막기 위해 만든 국가 전략으로, 대표적인 역사 왜곡 사례다.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은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킴으로써 조선족도 중국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은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대문짝만하게 표지석까지 세우며 윤동주 시인을 중국인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여기에 가세한 셈이 됐다. 올해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윤동주가 `재외동포 시인`으로 수록됐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반일 종족주의` 논쟁이나 `조선족이 된 윤동주`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내부에서조차도 이념과 정쟁으로 갈라져 우리 역사를 흔드는 마당에 다른 나라에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라고 주장할 수 있겠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갈했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이 지난 지금도 온 국민이 제2의 독립운동을 외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세계 6대 제조·수출 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췄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수준의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에는 소홀한 결과다. 이제 더욱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하다. 또 한·중·일 역사전쟁에 대비해 저명한 세계 학자들이 한국 역사를 연구하도록 국책사업으로 지원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에 외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학 연구를 지원하며 지일파를 육성해 왔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위안부·강제징용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과 남의 나라 역사·인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차 하면 눈 뜨고 우리 역사를 잃을 판이다. 힘없는 나라에 역사는 없다.

[김주영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