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옥(玉) 문화의 전래 추정경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새밀 2019. 3. 7. 16:01




옥(玉) 문화의 전래 추정경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세계 최고(最古)의 옥(玉)은 흥륭와(興隆窪, 싱롱와)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또 그 옥(玉)의 채광지는 동남쪽 약 450km에 있는 현재의 요령성 수암(岫岩) 옥광산임이 확인되었는데, 현재도 수암 옥광산이 중화인민국 내의 옥(玉) 수요 60%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흥륭와(興隆窪)  문화 유적지와 수암광산의 위치는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흥륭와 문화 유적지와 수암광산의 위치 등 



흥륭와문화에 속하는 유적들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몽골자치구 적봉(赤峰)시에서 요령성에 걸쳐서 발굴되었는데, 서기전 6,200년경에서 서기전 5,4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시대 문화이다.

흥륭와문화에 이어지는 문화로서 사해(査海) 문화(서기전 6,000~5,200년경), 조보구(趙寶溝) 문화(서기전 5,400~4,500년경), 홍산(紅山) 문화(서기전 4,700~2,900년경), 하가점 하층문화, 하가점 상층문화 등이 요하 일대에서 발굴되었다.

또 흥륭와 문화보다 앞선 시기의 유적으로서 요령성 심양시에서 신락(新樂) 문화(서기전 7,200년 경)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요하 일대는 유적 단위의 '문화'수준을 넘어서서 '요하문명'(遼河文明)이라고 명명(命名)하여 되었다.

요하 지역의 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08년에 홍산문화에 속하는 유적이었는데 8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서 현재까지 대략 500 군데 이상의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흥륭와(興隆窪, 싱롱와) 문화(서기전 6,200~5,400년경)는 비취 등 구슬 제품이 출토된 문화로서 현재의 중화인민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용 형상의 유적이 발굴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흥륭와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옥결(귀걸이)의 모습은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2] 흥륭와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옥결(귀걸이)의 모습

 




또 유적에서 수혈식(구덩이식) 주거지가 120개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낮은 온도로 구운 평저원통형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각 주거지의 중앙에 부뚜막이 있었으며, 유적 중앙에는 큰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있었는데, 대략 2만㎡ 규모의 큰 취락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사해(査海) 문화(서기전 6,000~5,200년경)와 조보구(趙寶溝) 문화(서기전 5,400~4,500년경)를 거쳐 홍산(紅山) 문화(서기전 4,700~2,900년경)에 속하는 분묘에서 비취 등 옥으로 만든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돼지·호랑이·새·용 등을 새긴 장식품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공예품으로서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저룡(猪龍)' 또는 '옥저룡(玉猪龍)', '옥웅룡(玉熊龍)'등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용을 조각한 구슬) 공예품들에 대하여 홍산 문화가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용이 아나라 생물의 태아를 본 떠 만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또 홍산문화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이 발견된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한민족(韓民族, 또는 동이족)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한(韓)·중(中) 간에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옥기들의 모습은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3]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옥기들의 모습





그런데 2007년에 강원 고성군 문암리 유적에서 옥결(玉抉, 귀걸이)이 발굴되었는데, 흥륭와문화 유적에서 토출된 옥결과 모양이 거의 같다고 한다. 문암리 유적은 시기적으로 서기전 6,000~3,0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 2011년에 전남 안도리 유적지에서 옥결(玉抉)이 발굴되었는데, 이것도 흥륭와문화 유적에서 토출된 옥결과 모양이 거의 같다고 한다. 안도리 유적도 거의 서기전 6,000년경까지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홍콩 중문대학의 등총교수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옥기 전문가인데, 그는 '서기전 6,000년경에 요서지역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된 옥결(玉抉)은 서기전 5,000~4,000년경에 장강 유역에 전래되고, 서기전 2,500년경에 광동성 광주 인근 주강 유역까지 퍼졌는데, 서기전 2,000년경에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베트남 북부까지 전래되었으며, 서기전 1,000년경에 운남성 일대와 베트남 남부까지 시간 차를 두고 전래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85년에 현재의 안휘성 함산(含山)현 능가탄(凌家灘)촌에서 발굴된 능가탄(凌家灘) 문화는 서기전 3,600~3,3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옥기(玉器)가 다량 발굴되었다. 능가탄 유적의 위치는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4] 능가탄, 양저, 석가하문화의 위치 등

또 1936년에 절강성 항주(杭州)시 여항(余杭)현 양저(良渚)에서 장강 하류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으로서 양저문화가 발굴되었는데, 시기적으로 서기전 3,300~2,2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옥기와 흑도 등이 발굴되었는데, 묘 한 곳에서 다량의 옥기가 출토되었다고 하며, 흑도는 산동성 지역의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1987년에 항주시 여항현 안계향 요산(瑤山)에서 제단 유지를 발견하였는데, 제천의식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또 호북성 천문(天門)시 석하(石河)진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서기전 2,800~2,2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석가하(石家河)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청동기 제품과 더불어 옥기, 흑도 등이 출토되었으며, 제사유적과 성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양저문화와 석가하문화의 위치는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다.

즉, 옥문화는 요하지역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황하 중하류 지역을 거쳐 장강 중하류 지역으로 남쪽으로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옥문화만 전래되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