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세계 최고의 소로리 볍씨

새밀 2019. 3. 7. 15:49

세계 최고의 소로리 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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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6.07


세계 최고의 볍씨가 출토된 소로리 유적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한국토지공사에서 조성한 ‘오창과학산업단지’내에 있으며, 충북대 박물관에서 지표조사(1994)•시굴조사(1996~97)를 거쳐, 1차 발굴조사(1997~98)의 종합 연구결과를 ‘淸原 小魯里 舊石器遺蹟’(2000년)으로 학계에 발표했다.


특히 소로리Ⅰ지구 토탄 2구역에서 위 토탄층(14,820~13,010년 전)과 아래 토탄층(17,310년 전)에서 각각 볍씨가 출토되어 주목되며,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이들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로써 벼의 기원과 진화 연구에 관한 중요한 자료임이 밝혀졌다. 이에 필자는 서학수 교수(영남대)•허문회 명예교수(서울대)등과 함께 ‘제4회 벼 유전학 국제회의’(필리핀,1999.10)에서 발표해 중국•일본•미국•인도 등의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게 됐다.


2차 학술조사(2001)에서는 고대벼와 유사벼로 밝혀진 볍씨가 집중 출토되는 원지점(in situ)을 확인했고, 그 지점에서 많은 볍씨들이 출토돼 볍씨가 외부로부터 흘러왔을 것이라는 일부의 의문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1•2차조사를 통하여 59톨의 소로리 볍씨를 찾았고, 작물학•유전학•고고학•지질학•식물학 등 여러 학문분야와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그 연구결과는 ‘제1회 소로리 볍씨 국제학술회의’(2002.12.)를 개최해 종합적인 발표를 하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여러 전문학자들은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졌던 중국 양자강 유역의 옥섬암 유적 출토 볍씨(약 1만1천년 전)보다 소로리 볍씨가 2~3천년 앞서는 세계 최고의 재배벼로 인정하였으며,소로리 유적의 보존 필요성 및 공동조사•발굴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2003년 6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제5회 세계고고학대회(WAC-5)에서 ‘세계 최고의 15,000년 전 소로리 볍씨 발굴과 의미’라는 필자의 논문발표는 많은 국제회의 참가 학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갖게 하였다. 영국 BBC 방송은 이와 같은 내용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한국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는 타이틀로 보도했으며(2003.10,22), 인터넷판으로 다시 전 세계에 보도해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로 널리 알려졌다.


이어서 에이에프피와 르몽드지에 소개되는 등 일련의 보도를 통해 소로리 볍씨는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최근 캐나다에서 발간되는 ‘씨앗과 쓰임의 백과사전’에 게재할 원고집필 요청을 받아 필자는 공동연구 학자들과 함께 준비 중에 있다.


결국 이 소로리 볍씨가 갖는 중요한 인류사적•식물학적 의미는 전 세계 수십억 인구의 주식인 벼의 기원이 구석기시대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아열대에서만이 아니고 아한대에 가까운 한국의 소로리도 기원지의 하나임을 밝힌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출토된 볍씨는 많은 야생벼와 함께 탈립이 잘 안되는 재배벼 이전 단계인 ‘순화벼’인 것으로 확인돼 고고학계의 중요한 이슈인 농경발달단계 대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로리 유적의 의미와 중요성이 크게 평가되는 가운데, 한국구석기학회 등 8개 학회에서는 유적 보존과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에 대한 건의서를 99년부터 2001년까지 수차례 관계기관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한국토지공사와 충청북도에서는 유적지를 공장부지로의 매각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유적이 영원히 멸실될 위기에 놓이게 됐으며, 이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한국내셔날트러스트 등과 충북대학교 교수 72명도 강력하게 보존요청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처럼 모든 관련 학회와 학자, 시민단체를 포함한 NGO단체까지도 이 유적의 문화재지정과 보존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나(보존범위 3천평), 개발과 예산문제 때문에 보존하지 못한다는 문화의식과 역사의식은 정말로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쌀의 해’이다. 소로리 유적과 볍씨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계속되는 연구결과를 세계학계에 보고할 의무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소로리 볍씨 출토지는 문화유산으로서 지정 보존해야 한다.

이융조 충북대 한국고대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