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의 자가 수필

어머니 같은 느티나무

새밀 2013. 9. 7. 10:16

어머니 같은 느티나무/미산 윤의섭

 

매미 소리가 요란한 한여름에 느티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흐르는 매미

소리와 함께 낮잠에 빠진다. 휴식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자라 잡힌 것이 마을 어귀의 정자

나무인 느티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받들어 온 수많은 민속적 흔적과 전설이 남아 있다. 

때로는 영목 靈木으로, 귀목 貴木으로, 또 수호신 구실을 하는 신목 神木으로 마을에서 떠받들기도

하였다. 느티나무는 괴목 槐木이라고 하는데 유서깊은 전설의 무대에는 어김없이 당산목 또는 마을의

지킴이 노릇을 하는 느티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1,000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60여 그루의 나무 중 25그루가 느티나무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가 아버지 같은 상징이 풍긴다면 느티나무는 어머니 같은 상징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 마을마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이

성장 후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고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된 질서를 보는 듯하다. 오래된

나무의 수피 樹皮는 진한 회색으로 비늘처럼 떨어지며 피목 皮目이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다.

밑부분의 줄기는 우람한 힘을 풍기며 수많은 가지를 솟아오르게 품고 있다. 겨울 나목 기에 줄기와

가지의 모양이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만남이 아름답고, 자연에 부딪친 나신의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애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끌어내는 친화력을 느낀다.

 

작고 아담한 잎은 단정하고 예의 바른 개성을 나타내며 잎은 어긋나고 잎끝은 뾰족하지만, 잎맥을

경계로 양쪽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5월경이 되면 나뭇잎 사이사이에 초록색 꽃이 피고 곧

열매를 맺는다. 모든 잎사귀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니고, 잎과 줄기가 이어지는 부분에 납작하고 동그란

모양의 갈색 씨가 달린다. 씨가 달린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다른 잎들보다 먼저 갈색으로 변색한 잎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잎들은 십중팔구 모두 열매를 맺고 있는 잎들이다.

모두가 녹색이어서 주의해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가을의 나무이다. 잎은 가을에 황금색 또는 윤기 있는 구리색으로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봄에는 벚꽃길이 으뜸이고 가을에는 느티나무 단풍길이 제일 훌륭하다. 가로수 단풍 숲에

거닐어 보면 천계가 따로 없는 듯 무아지경을 걷는 것 같다. 자연의 오묘한 미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환상을 느낀다.

 

느티나무의 몸통을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견디고서 꿋꿋하게 서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의연히 살아왔다.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를

보노라면 세월이 무엇을 말 해주는지 이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줄 상징물은 없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혹과 터짐으로 얼룩진 상처마저 고통과 인내의 미학으로 바꾸어버린 엄숙함이 있다. 늙음과 낡음의

습성은 영원한 두려움으로 겹겹이 덮어 놓았다. 인간은 백 년을 살고 나무는 천 년의 자리를 지키며

이정표를 만든 깊은 뜻을 헤아려본다.

 

오래전부터 도시마다 가로수로 외래수종인 프라다나스를 많이 심더니 최근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토종인 느티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어, 그동안 자라며 훌륭한 풍치를 이루고 있음을 보면서 느티나무는

우리 민족을 따라다니는 속성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국토의 풍토에 잘 맞는

수종으로 오랜 기간 검증된 나무이니 앞으로도 국토 녹화에 적극적으로 활용 될것으로 보이며,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가로수 느티나무가 싱싱하고 굵게 자란 줄기를 만져보며 나의 피가 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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