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의 관조/미산 윤의섭
난초를 관조하면 어디선가 흐르는 바람을 따라 허공을 향해 뻗어나 가다 홀연히 휘어지는 난초 잎의 끊어질 듯한 가늘기에, 힘이 이어진 길고 유연함에, 그리고 꺽어지지 않는 기개에 눈길이 무아경으로 들어간다. 난초잎의 푸름은 일 년을 두고 변함이 없는 지조를 지녔다. 피어오른 꽃대의 우아함과 연한 홍화의 향기에서 청초한 그윽함을 흐르게 하는 것으로 그 마무리를 한다. 이 향기 하나만으로도 주위에 모이게 하는 덕을 지녔다. 난초 꽃의 모양은 둥글고 끝이 뾰족한 적당한 수의 꽃잎이 아기 품은 자세로 마주보고 있다. 난초의 선은 그린 듯 예쁜것 보다 자연을 닮은 즉흥에 매료된다. 마음속에 새겨진 오묘한 그 무엇을 나타내려고 애를 쓰며 움직이는 듯한 호소력을 자아내는 영감이 있다.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고 사치스런 거부감이 없는 귀한 품성을 나타내는 참 좋은 꽃이다. 사랑이나 학습 성취의 의미에서 이와 같은 멋은 마음을 긍정으로 이끄는데 매우 유익하다. 완숙한 노장층이나 기득권 지식과 부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 한시도 떨어져 있어서는 아니 될 개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비 개인후의 신선감과 메마른 농암을 표현함에 미묘한 색상의 조화를 볼 수 있다. 난초잎의 투 암이나 줄무늬의 변종이나 얼룩무늬의 현란한 개성을 표현하는 기교도 볼 수 있는데, 변화가 심하면 천박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잠시 스칠 뿐이고 이윽고 그것은 자존의 예능을 느끼게하는 소명을 배태한 타고남이 아닌가 당당해진다. 난에 심취한 애란 계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사유의 문화를 더욱 탐닉한다.
멀리 퍼지는 난초의 향기는 일직이 선비들이 난 향천리라 하였다. 난초잎은 잡초에 가릴 수 있어도 풍기는 향기는 단연 잡초를 압도한다. 이슬을 먹고 산다는 난초의 식성은 물을 적게 먹으며 양분의 탐식이 없는 고고함 그리고, 뿌리가 다 썩어들어가도 잎에 푸름은 여전하게 하는 끈기있는 생명력이 놀라울 정도이고 그러한 뿌리의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는 겸양이 있다. 난초의 더디고 더딘 성장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꼽는다. 주변이 깨끗한 곳에서 자라나 마치 군자의 상을 떠올린다. 사람으로 능히 본받을 만한 개념이 얼마나 많은가?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소위 경쟁력을 갖는다는 개념으로 보아도 훌륭한 사유의 대상이 아닌가.
난초의 멋은 자연스러움 이다. 난초 기질의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 이는 어디에 구속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이슬과 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난초를 애호하는 경우 간섭을 싫어하는 특징이 있어서 가꾸기 어려운 것이며 잘 기른 난초는 고가에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을 기용함도 이와 같은 맥락을 꿰뜷어야 비로소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다. 대놓고 들어내지 않는 은은함도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뒤태도 궁금하게 만드는 오묘함이 있다. 물주기에 주력하고 비료 주기에 유념하고 채광에 주력하는 도의 길을 아는 자가 분재 난초와 친할 수 있다. 뿌리를 썩게 하는 것은 물이요 난을 자라게 하는 것은 비료인데 잎을 강하게 하는것은 바람과 채광이니, 이를 영묘하리만큼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원하는 모양을 이루는 것이다. 난 꽃은 흰색에서 노란색까지 쉽게 만날 수 있으나 연한 붉은 계통의 색에 이른 것은 그 고귀함의 종결점이다. 난초의 깨끗한 곳에서 깨끗한 것을 적게 먹고살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풍모를 갖추고 향기를 풍기는 개성을 보고 사람들이 그러한 군자의 면모와 성정을 받아간다는 데에 진정한 난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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