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입추 冠岳立秋/미산 윤의섭
산구절초 잎이 진한 것은
백로를 앞두고
꽃 심을 품은 탓이리
돌계단을 오르면
돌이 마중하고
바위 뒤에는 큰 바위 서 있네
산을 오르는지
바위를 오르는지
숨이 찰 듯하면서도
시원한 물소리 따라오네
불꽃이 휘둘리는 듯한
뾰족한 산정에 오르니
아하! 시원하고나
임을 향한 연주대에는
풍경소리만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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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한 모금
조선 정조시대의 명신 채제공의 유관악산기"에 이르기를 "관악산은 서울의 신령한 산이요,
한 번 그 위로 올라가서 마음과 눈을 씩씩하게 하고 산을 우러르는 마음을 깃들이고자 하여
오랫동안 간절하게 계획을 품어왔지만, 속세의 때를 벗지 못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하였다.
"계곡물이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데 숲이 뒤덮고 있어 그 근원을 알 수 없다. 물길이 정자
아래에 이르러 바위를 만나게 된다. 날리는 것은 포말이 되고 고이는 것은 푸른 빛을 이루다가
마침내 넘실넘실 흘러 골짜기 입구를 에워싸고 멀리 떠나간다. 마치 흰 비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언덕 위에 철쭉꽃이 막 피어, 바람이 불면 그윽한 향기가 때때로 물을 건너 이른다.
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원하여 멀리 떠나온 흥취가 일었다." 한 것을 보면 지금의 관악산 정취를
그린 듯이 선명하게 표현한 듯하다. 또 아래와 같은 돌과 바위를 기어오른 기록도 보인다.
"가파른 벼랑길을 넘어섰다. 길을 가다가 끊어진 길과 깎아지른 벼랑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 아래가
천길 절벽이므로 몸을 돌려 절벽에 바짝 붙어 손으로 늙은 나무뿌리를 바꿔 잡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현기증이 나서 옆으로 눈길을 보낼 수가 없었다. 혹 큰 바위가 길 가운데를 막고
있는 곳을 만날 때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오목하여 그다지 뾰족하지 않은 곳을 골라 엉덩이를
거기 붙이고 두 손으로 그 주변을 부여잡으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고쟁이가 뾰족한 부분에
찢어져도 안타까워할 틈이 없었다. 이와 같은 곳을 여러 번 만난 다음에야 연주대 아래에 이르렀다."
고사에 고려 유신이 연주대에 올라 서경(개성)을 바라 보면서 한양의 성궐이 밥상을 대한 듯이
바로 앞에 있음도 외면하고 절의를 지킨 일이 회상 된다.
시경 詩經에 나오는 노래 //산에는 개암나무 있고 /언덕에는 도꼬마리가 있네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쪽의 미인이라 /저 미인이여 서쪽에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