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고조선 대담③ ‘요하문명’과 ‘레지 사료’, 만들어지는 고조선 역사의 뼈대

새밀 2020. 3. 25. 15:49

고조선 대담③ ‘요하문명’과 ‘레지 사료’, 만들어지는 고조선 역사의 뼈대

  • 김동호 기자
  • 2020-03-25

    고조선 대담③ ‘요하문명’과 ‘레지 사료’, 만들어지는 고조선 역사의 뼈대

‘요하문명’과 ‘레지 사료’, 그리고 고조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작년 ‘아스달 연대기’와 같은 드라마가 제작된 것 역시 이러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중심에는 국내 ‘요하문명’ 최고 권위자인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58)와 300년전 프랑스 레지 신부의 ‘레지 고조선 사료: RHROJ’ 기록을 제대로 해제/사료교차검증/사료상호보완 해서 이슈화시킨 역사학자 유정희(동양고대사 전공, 38)가 있다. 2020년 봄을 맞이하여 때마침 이들의 대담이 성사 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관련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들의 ‘고조선 대담 총 4부작’ 중 ③부이다.


◇그렇다면 요하문명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한반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가?

우실하 : 요하문명 지역에서 한반도로 연결되는 것들을 시기별로 간단히 소개하면, (1) 중석기 시대부터 이어지는 세석기 문화, (2) 9000년 전 소하서문화 시기부터 시작된 빗살무늬토기 문화, (3) 8000년 전 흥륭와문화 시기부터 시작된 옥결(옥으로 만든 귀고리) 문화, (4)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되어 홍산문화에서 꽃피는 각종 형태의 돌무덤과 적석총, (5) 7000년 전 부하문화 시기부터 시작된 골복(骨卜: 동물의 뼈를 이용한 점) 문화, (6) 4300년전 하가점하층문화 시기부터 보이는 ‘치를 갖춘 석성’, (7) 3000년전 하가점상층문화 시기부터 보이는 비파형동검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가운데, (1), (2), (4), (6), (7)은 비슷한 시기에 황하문명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며, 한반도와 연결되는 것들이다.

◇만주 일대는 건조한 유목지대인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이 꽃 필수 있었다는 것인가?

우실하 :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한다. 요하문명이 발견된 지역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역으로, 현재는 한가운데에 동서 500km 남북 200km에 달하는 우리 대한민국 만한 과이심사지(科爾沁沙地, 카라친사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요하문명이 꽃 피던 시기에는, (1) 동아시아 계절풍(=태풍)이 만주 지역까지 올라 왔었고, (2) 물도 풍부하고 기온도 높았으며 습도도 높은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으로 현재 한반도 중부 지역과 비슷한 기후 조건으로 문명이 꽃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것들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발견된 것도 놀랍지만, 나는 현재 발견된 것의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의 유적이 사막에 묻혀서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유정희 : 나처럼 본래 중국 고대 역사, 그중 선진사(先秦史)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상식 같은 게 하나 있다. 무엇이냐 하면 만주나 요서, 요동 일대가 춘추전국시대 이전까지는 사람이 살기 꽤 괜찮은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황하일대 상(商), 주(周: 西周)나라 청동기에 코끼리, 코뿔소 모양이 보이는 것은 당시 황하나 장강 일대가 그런 동물들을 보기 어렵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요하문명 지역에 그러한 찬란한 고대문명이 꽃 필수 있었다는 것은 막연한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덧붙여 동양고대사 전공자로서 말하는데, 사실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란기도 이러한 당시 중국 중원지역의 급격한 환경변화가 원인이 됐다는 가설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논문도 준비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각 같다.

◇소위 ‘요하문명의 꽃’이라는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문화적 수준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우실하 :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3000년까지의 고고학 문화다. 특히 홍산문화 후기인 기원전 3500-3000년에는 이미 ‘초기 국가 단계’ 혹은 ‘초기 문명 단계’에 진입한다고 보고 있다. 홍산문화에서는, (1) 인간 실제 크기의 1-3배에 이르는 등급이 다른 여신이 등장하여 이미 ‘주신(主神)’ 개념이 등장하고, (2) 학자들은 당시에는 이미 최소한 6-7등급의 신분분화가 되어 있었고, (3) 수많은 옥기(玉器)와 거대 적석총들이 출현하여 옥장인과 석장인도 직업적 분화되어 있었고, (4) 한 변이 20-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식 적석총’이 등장하며 최대는 지름이 60미터의 7층 피라미드 형식이며, (5) 3층 원형 천단(天壇)은 정사각형의 내접원과 내접원 등의 개념을 통해 설계되었으며, (6) 1인의 지고무상한 왕급에 해당하는 절대 권력자가 이미 탄생했고, (7) 신분이 높은 이들은 이미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위로 올려 관(冠)을 쓰고 옥 귀고리를 했으며, (8) 신분에 따라 크기가 다른 묘를 사용하는 등 예제(禮制)가 확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초기 문명 단계’ 혹은 ‘초급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유정희: 홍산문화는 이미 상당히 발전된 수준이다. 위에 우(禹) 교수님이 그 발전도에 대해 이미 언급하셔서 자세한 건 언급하지 않겠지만, 사실 이에 대해 일반인들은 중원 지역보다 왜 요하유역이 먼저인지 의문인 사람들이 꽤 있더라. 그러나 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학술적으로 좀 더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아시아 지역보다 문명이 빠른 중동지역의 기술문명이 요하유역으로 전달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므로 중원지역보다 요하 유역이 빠른 것은 비상식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어찌보면 요하유역 보다 문명 발생이 약간 늦을 수도 있는 중원지역이 어느 시점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요하유역 쪽 문명을 따라잡은 걸 연구하는 게 더욱 관건일 것이다.

◇’삼국유사’ 등 우리나라의 사료에서는 단군조선이 ‘요임금과 같은 시기’ 혹은 ‘요임금 50년 후’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요임금의 도성이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우실하 : 2015년 12월 18일 국무원기자회견실에서 ‘중화문명탐원공정’을 마무리하며 도사(陶寺) 유적이 전설적인 요(堯) 임금의 수도인 평양(平陽)이라고 정식으로 공표하였다.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의 도사 유적은 요임금의 도성 유적으로, (1)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성 구조로 기원전 2500-2000년까지 사용되었고, (1) 전체 유적지 면적은 430만 평방미터, 외성(外城) 안의 면적은 280만 평방미터, 왕과 귀족들이 살던 내성(內城) 안의 면적만 13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발굴보고서에서 “도성은 기원전 2400년 경 방국(方國) 단계의 수도”라고 보고 있고, 세계 최초의 천문대와 외성 밖 제단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갑골문보다 1천년 앞서는 최초의 문자도 발견되어 전설적인 요순시대는 실제 역사임을 공표한 것이다.

‘삼국유사’ 등 우리나라의 사서에서는 단군고조선이 ‘요임금과 같은 시기’ 혹은 ‘요임금 50년 후’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사 유적의 발견으로 요임금이 실존인물임이 유력해진 이상, 그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다는 단군과 고조선이 실재(實在) 역사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0C3YNFY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