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를 중국 대사관에 접수시킨 대동재단 바른역사정립위원회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허신행(전 농림수산부 장관) 공동대표. |
대동재단 바른역사정립위원회(대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는 지난 4월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를 주한중국 대사관에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대동재단 바른역사정립위원회는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분열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되는 대동(大同)의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것을 목표로 출범한 역사연구 단체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과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심백강 대동역사모임 대표는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 주석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일깨우고자 중국인의 조상이 쓴 사료에 근거해 시 주석에게 보내는 5가지 공개질의서를 중국대사관에 제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사적 사실을 보면 중국이 한국의 일부였다고도 볼 수 있는 근거가 많다”며 “우리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규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5가지 조항에 대해 정식으로 질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대동재단 측은 질의서를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해서 다음 주 중으로 중국정부, 외신, 미국 국무부에 발송할 예정이다. 다음은 질의서 전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
한국사가 중국사에 귀속된다는 주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론이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이를 학계의 일부 의견일 뿐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짐으로써 동북공정이 중국정부가 주도한 역사침탈의 마수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시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사드의 한국배치를 저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동북공정의 조작된 역사이론을 활용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한국의 1만년 주권국가에 대한 역사침략이자 동아시아 문명의 종주국인 한국의 영토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서 8천만 우리 한민족은 이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시주석이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런 망언을 하게 된 숨은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반도에 중국의 역사적 연고권을 제기함으로써 남한의 사드배치문제에 대해 중국도 관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은연 중 트럼프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본다. 이에 우리는 시주석의 근거 없는 망언을 규탄하고 한국사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다음과 같이 공개질의를 하니 답변해주기 바란다.
첫째 한무제(漢武帝)시대에 고조선의 서쪽 영토 일부가 중국의 한사군(漢四郡) 지역으로 편입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때의 한사군은 오늘날의 한반도 지역이 아닌 중국의 하북성 북경시 부근이었다. 그것은 전한서(前漢書)에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서 현도, 낙랑군을 설치했다(東過碣石 以玄菟樂浪爲郡)”는 기록이 잘 증명한다. 한사군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중국 영토의 일부로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조작한 이론이며 역사의 진실이 아니다.
오늘날의 남·북한 지역이 역사상에서 중국 한족정권의 직접 지배를 받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시주석은 한반도가 중국 한족정권의 일부가 된 사실을 문헌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제시해주기 바란다. 다만 송대(宋代) 이전의 자료여야 한다. 명·청시대의 자료는 역사왜곡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산해경(山海經)에는 '발해의 모퉁이', 즉 지금의 발해만 일대에 고조선이 있다고 말했다. 송대에 국가에서 편찬한 무경총요(武經總要)를 보면, "북경 북쪽에 조선하(朝鮮河)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대의 4대 사서(四大史書) 중의 하나인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도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盧龍縣)에 조선성(朝鮮城)이 있었다"고 실려 있다. 1500년 전 선비족 모용은(慕容恩)의 비문에도 "하북성의 북경 부근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적혀 있다. 지금 중국의 수도가 있는 북경 일대는 일찍이 고조선의 영토였으며, 한 무제가 이 지역을 침략하여 잠시 한사군을 설치했으나 광개토대왕이 다시 회복하여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수양제(隋煬帝)는 제1차 고구려 정벌에 나서면서 내린 벌고구려조서(伐高句麗詔書)에서 “고구려의 보잘 것 없는 무리들이 혼미하고 불공스러워 발해와 갈석산의 사이에 모여서 살고 있다(高麗小醜 昏迷不恭 崇聚渤碣之間)”라고 말했다. 수나라가 정벌한 고구려가 당시에 한반도지역에 있었다면 수양제가 어떻게 고구려를 가리켜서 “발해와 갈석산의 사이에 모여서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수양제는 고구려와의 1차 전쟁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이후 요해, 즉 발해에서 전쟁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장졸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주라는 수장요해전망조(收葬遼海戰亡詔)를 내렸다. 수나라 군대가 한반도에서 싸우다가 죽었다면, 수양제가 어떻게 발해에서 싸우다가 죽은 장졸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주라는 조서를 내렸겠는가.
당태종은 고구려의 친정(親征)에 나서면서 그가 손수 작성한 수조(手詔)를 내렸는데 “요수와 갈석산에 가서 죄를 묻겠다(問罪遼碣)”고 말했다. 남북조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유신(庾信)은 요수를 하북성 남쪽 보정시(保定市) 역현(易縣)의 역수(易水)라고 했고,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역수 유역에 갈석산이 있다고 하였다. 당태종의 “요수와 갈석산에 가서 죄를 묻겠다”는 말로 볼 때, 당시 고구려의 서쪽 강역은 오늘날 하북성 보정시 역현의 역수유역, 백석산 일대에 걸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또한 남송 때 학자 왕응린(王應麟;: 1233-1296)은 통감지리통석(通鑑地理通釋)에서 “당나라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하북성 창려현(昌黎縣)에 설치되었다”고 말했다.
오늘날은 우리민족이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송대 이전의 중국문헌에 의하면 고조선과 고구려시대에는 하북성 남쪽 역수유역을 경계로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였고, 북경지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의 수도 북경은 역사적으로 한국영토의 일부였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시주석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해주기 바란다.
셋째 일본은 대만을 50년 동안 통치했고 중국 또한 한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만이나 중국이 역사적으로 일본의 일부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아베가 트럼프를 만나 대만과 중국이 역사적으로 일본의 일부였다며 역사적 주권을 제기한다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시주석은 동북공정에 의해 날조된 역사인식에 기초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함으로써 한국인의 권위와 한국의 국격을 세계적으로 추락시켰다. 이것이 과연 우방의 국가 지도자로서 정당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하는지 답변해주기 바란다.
넷째 시주석은 혹시 명·청시대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망언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찍이 고아가 되어 머슴살이와 승려노릇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다 중국의 황제가 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은 그의 증조부 이상의 선조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주원장은 오히려 동이계(東夷系)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주원장이 한족이고 명나라가 한족 국가라고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청나라의 뿌리는 금金나라이고 금나라의 뿌리는 신라에 닿아 있다. 신라인 김함보(金函普)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阿骨打)의 시조라는 사실이 금사(金史) 본기(本紀)에 수록되어 있다. 시주석의 논법에 따르면 중국의 청나라는 신라의 일부였다는 논리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 점에 대해 시주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을 듣고 싶다.
다섯째 오늘의 중국역사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화하족(華夏族)과 동이족(東夷族)이 공동으로 이룩한 역사이다. 화하족과 동이족은 동과 서로 나뉘어 두 축을 형성하면서 중국역사를 이끌어 왔다. 이 양자 중에 중국역사의 시원은 어디이며 원조는 누구인가?
동이족의 시조는 복희(伏羲)로 상징되고 화하족의 시조는 황제(黃帝)로 상징된다. 그런데 복희를 이어서 신농씨(神農氏)가 나오고 신농씨를 이어서 황제가 등장했다고 주역(周易) 계사(繫辭)에서 말했다. 동이족의 복희가 중국문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주역이 입증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복희가 등장한다. 우리 한민족은 화하족의 시조 황제보다 수천 년 앞서 중원의 주인이었던 복희의 직계 후손이다. 우리 동이민족은 시조인 복희가 발해만 유역에서 오늘 중국문명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한다면 동이족이 중국의 원주인이고 화하족은 침입자요 외세라고 말할 수 있다. 외세, 침입자가 주인행세를 하면서 옛 주인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이라고 보는데, 시주석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해주기 바란다.
끝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번 시주석의 망언으로 인해 상처받은 한국민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이상의 질의에 대해 성실히 답변에 임해주길 기대한다. 격분한 8천만 한민족이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의 옛 주인으로서 역사적 연고권을 내세우며 고조선과 고구려 시대의 역사영토와 역사주권을 되찾겠다고 분연히 일어선다면, 중국으로서도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24일
대동재단 바른역사정립위원회
대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
회원 : 강대일, 강태욱, 강희복, 고장곤, 김균하, 김기선, 김병옥, 김부언, 김선용,
김승숙, 김승원, 김영인, 김용성, 김재철, 김주근, 김혜련, 김홍선, 나영철,
나윤석, 남덕인, 문일석, 박계옥, 박신철, 박성철, 박정란, 박현정, 성인제,
손정미, 손희종, 송재복, 신용섭, 심재철, 심재홍, 양재길, 엄재목, 오인숙,
윤혜숙, 이갑주, 이강근, 이두원, 이영준, 이정하, 이철기, 이형모, 이희관,
임정면, 임홍명, 장설매, 정근택, 정금란, 정기태, 정승근, 정현서, 조안석,
조영규, 조은정, 최중일, 한승현, 홍가이, 황광구, 황병수 이상 6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