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시대의 美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동양에서는 인물에 관한 비평이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성행했다. 동진(東晉)시대에는 `여덟 준걸`을 꼽아 당대(當代)의 인물로 삼기도 했다.
송문흠은 명문가 출신의 사대부로, 후한 시대의 예서(隸書)인 팔분서(八分書)를 매우 잘 썼다. 후한 시대에 완성된 팔분서는 좌우로 펼쳐진 자태가 매우 예쁜 서체다. 그 이전의 예서는 팔분서보다 기세가 강하고 투박한 특징을 지녔고, 당나라 때부터 쓰인 예서, 당예(唐隷)는 팔분서의 장점이 없어지고 둔했다. 18세기 조선에서는 팔분서를 전공으로 익힌 명가들이 등장했는데 그중에 송문흠은 능숙한 솜씨로 군계일학으로 꼽혔다. 국왕 영조도 송문흠의 그런 재주를 알았고, 그와 그의 글씨를 아꼈다. 왕을 비롯해 같은 시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미인 송문흠의 팔분서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예서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사진 왼쪽 글씨의 가로획을 보면, 굵게 긋다가 끝부분만 치켜들어 올리고 말지만 송문흠의 그것은 위로 살짝 휘어졌다가 되돌아오고, 굵기에서도 변화를 주어 율동감을 지니고 있다. 글자의 너비가 넓은 것은 그런 율동감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런 점에서 느끼는 미감이 팔분서의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송문흠의 예서는 팔분서의 아리따움의 미를 흐뭇하다고 할 만큼 잘 갖췄다.

글씨만이 아니라 인간 송문흠은 고상하고도 소박하며 남을 진심으로 대하는 성품이었다. 고상함은 저 글씨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고, 소박함과 진실성은 그의 일화들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셋집을 전전하는 벗을 보다 못해 돈을 마련해 그에게 집을 사 주었다. 큰 재산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 집이 북향임이 미안하다며 글을 지어 `집을 얻은` 벗을 위로하기까지 했다. 집을 얻은 벗이 바로 전서의 명가 이인상(李麟祥)이었고, 그는 송문흠이 준 글에서 능호(凌壺)라는 말을 따 호로 삼았다. 이런 흐뭇한 사람다움에 말미암아 사람들이 그를 미인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배운 옛것에 매몰되기도 하며, 이미 가진 것을 지키느라 남을 생각지 못할 때도 많다. 배운 바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면 그 걸음은 큰 도약일 것이며, 내가 가진 것을 내어 남을 돌보는 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운, 높은 정신이다. 송문흠은 큰 부자도, 세력가도 아니었고 성인은 더욱 아니었지만 세상은 그를 가리켜 미인, 아름다운 `사람`이라 불렀다.
이 시대, 스스로 미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많고, 미인의 조건을 남에게 요구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미인의 선결 조건이 `사람`임을 과연, 알고 있을까?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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