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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 송문흠[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시대의 美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새밀 2019. 12. 2. 10:17

[우리 그림과 글씨 이야기] 시대의 美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 입력 : 2019.11.09

왼쪽은 17세기 말의 조선 예서. 오른쪽은 송문흠의 예서  부분.
사진설명왼쪽은 17세기 말의 조선 예서. 오른쪽은 송문흠의 예서 <경재잠> 부분.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떠나, 남들의 칭송을 받는 사람들은 `미인(美人)`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굴원(屈原), 북송의 소식(蘇軾), 조선시대 정철(鄭澈)이 각자의 작품에서 읊은 미인은 그들이 모시던 군주를 가리키지만, `아름다운 사람`이 경외하는 권력자만은 아니었다.

동양에서는 인물에 관한 비평이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성행했다. 동진(東晉)시대에는 `여덟 준걸`을 꼽아 당대(當代)의 인물로 삼기도 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명인(名人) 도연명이나 서예의 성인(聖人) 왕희지조차 여기에서 빠진 것을 보면 그 여덟 명은 여간 훌륭한 인물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선 시대에도 `여덟 미인`이 있었다. 영조(英祖) 시대에 활동한 사대부들 중에 헌걸찬 외모와 빼어난 재주를 지닌 이들을 선정하여 `팔미인(八美人)`이라고 했다. 홍자(洪梓), 신소(申韶), 송문흠(宋文欽), 황경원(黃景源) 등인데, 정조 때 18세기의 인물들을 비평한 인물지 `병세재언록`에 나온다. 이달에 소개할 글씨의 주인인 송문흠(1710~1752)이 바로 이들 여덟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송문흠은 명문가 출신의 사대부로, 후한 시대의 예서(隸書)인 팔분서(八分書)를 매우 잘 썼다. 후한 시대에 완성된 팔분서는 좌우로 펼쳐진 자태가 매우 예쁜 서체다. 그 이전의 예서는 팔분서보다 기세가 강하고 투박한 특징을 지녔고, 당나라 때부터 쓰인 예서, 당예(唐隷)는 팔분서의 장점이 없어지고 둔했다. 18세기 조선에서는 팔분서를 전공으로 익힌 명가들이 등장했는데 그중에 송문흠은 능숙한 솜씨로 군계일학으로 꼽혔다. 국왕 영조도 송문흠의 그런 재주를 알았고, 그와 그의 글씨를 아꼈다. 왕을 비롯해 같은 시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미인 송문흠의 팔분서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사진에서 보듯이, 그의 예서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사진 왼쪽 글씨의 가로획을 보면, 굵게 긋다가 끝부분만 치켜들어 올리고 말지만 송문흠의 그것은 위로 살짝 휘어졌다가 되돌아오고, 굵기에서도 변화를 주어 율동감을 지니고 있다. 글자의 너비가 넓은 것은 그런 율동감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런 점에서 느끼는 미감이 팔분서의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송문흠의 예서는 팔분서의 아리따움의 미를 흐뭇하다고 할 만큼 잘 갖췄다.


팔분서의 미를 잘 갖췄다고 해서 전형(典型)만 고집한 것도 아니다. 송문흠의 예서는 팔분서의 전형을 근간으로 하되 상투성이 없다. 그래서 그의 예서에는 고전(古典)을 뿌리로 하여, 그것의 원리를 깨우쳐 자기의 걸음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동에는 이러한 `나아감`이 크고 중요한 요소다.

글씨만이 아니라 인간 송문흠은 고상하고도 소박하며 남을 진심으로 대하는 성품이었다. 고상함은 저 글씨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고, 소박함과 진실성은 그의 일화들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셋집을 전전하는 벗을 보다 못해 돈을 마련해 그에게 집을 사 주었다. 큰 재산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 집이 북향임이 미안하다며 글을 지어 `집을 얻은` 벗을 위로하기까지 했다. 집을 얻은 벗이 바로 전서의 명가 이인상(李麟祥)이었고, 그는 송문흠이 준 글에서 능호(凌壺)라는 말을 따 호로 삼았다. 이런 흐뭇한 사람다움에 말미암아 사람들이 그를 미인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배운 옛것에 매몰되기도 하며, 이미 가진 것을 지키느라 남을 생각지 못할 때도 많다. 배운 바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면 그 걸음은 큰 도약일 것이며, 내가 가진 것을 내어 남을 돌보는 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운, 높은 정신이다. 송문흠은 큰 부자도, 세력가도 아니었고 성인은 더욱 아니었지만 세상은 그를 가리켜 미인, 아름다운 `사람`이라 불렀다.

이 시대, 스스로 미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많고, 미인의 조건을 남에게 요구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미인의 선결 조건이 `사람`임을 과연, 알고 있을까?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