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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새밀 2019. 7. 14. 10:20


빗속의 빛을 담은 그림, 인왕제색도

  • 입력 : 2019.07.13  

계절을 담은 그림은 일찍부터 그려졌고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어둑하고 고요한, 눈 쌓인 겨울 풍경이나 쓸쓸함으로 가득한, 텅 빈 산이 보여주는 가을, 거센 비바람 또는 하늘을 깊은 바다처럼 보이게 하는 뭉게구름으로 여름날을 묘사한 그림들도 많다. 활짝 핀 꽃으로 그려낸 봄날은 말할 것도 없다.

정선(鄭敾, 1676~1759)도 각 계절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중에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역시 어느 여름날의 풍경을 담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걸작 가운데 걸작이다. 근래에 답사객들이 서울의 서촌 일대를 걸으며 이 `인왕제색도`의 정경이 나올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인쇄하여 온 그림과 실제 경치를 맞추어 보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간혹 그림을 그린 장소를 찾았노라 소개하는 이들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정선이 인왕산을 해체하여 추상화로 그리지 않은 덕분에 화폭 속 인왕산을 실제로 보는 그 산과 비교하면서 답사하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 재미보다 더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인왕제색도`는 작가가 포착한, `비가 방금 갠 인왕산의 자태`를 담고 있다. 음력 윤유월 하순에 그렸다고도 했고, 그려진 정경 또한 여름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이 작품에서 여름의 계절감을 두고 더 말할 것이 무엇일까. 심지어 인왕산도 제목에 내세우기는 했지만 오히려 방금 비가 갠, 한낱 산일 뿐이며, 기와를 인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가옥 한 채를 두고 그것이 누구의 집인지 따져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 장쾌한, 여름의 전형적 이미지 앞에서는 옹색해 보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 그림에 쓰인, 이런저런 기법들과 그것의 명칭들은 이미 잘 알려지기도 했거니와, 우리가 눈으로 느끼는 진실보다 우선일 수 없다. 반면에 "이 그림보다 더, 비에 젖은 바위산의 빛나는 정경을 잘 묘사한 작품이 다시 있을까?"라는 감탄은 끝없이 터질 정도로, 이 그림의 매력은 그림의 저 물안개처럼 끝없이 솟는다.


관지가 알려주는 대로 이 그림은 1751년, 신미년 윤유월 하순에 그려졌다. 윤유월 하순이면 장마의 끄트머리였다고 보아도 괜찮을 듯하니 딱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그림 속의 날씨는 바로 요즘의 그것과 닮았을 것이다. 축축하고 흐린 하늘, 며칠 동안 이어지는 비가 상징하는 장마지만, 우리가 겪어보아 알듯이 그 기간에도 종종 하늘이 개고 햇살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리던 비가 문득 그치고, 구름을 밀친 햇살 저편에 무지개가 활짝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지 않던가. 그렇게 해본 이라면 이 그림이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눈을 감고도 인왕산을 그려내기에 충분했을 정선이었지만 1751년 여름, 어느 날의 인왕산은 더욱 특별했던 모양이다. 장마의 끄트머리, 그는 빗속의 빛을 보았고, 말갛게 씻은 바위가 윤기 넘치는 자태로 가까이 다가서고, 물안개는 비단처럼 부드럽지만 다가서려는 이를 가로막는 장면을 보았으리라. 정선은 그 느낌을 포착하여 훌륭하게 이미지로 그려냈던 것이다.

진경산수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그림처럼 작가가 경관을 보며 포착한 진면목이 그려졌느냐다.
그 점은 내버려 두고 확인도 못 할,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에 감각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런 문답은 작품을 두고 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깃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쾌한 걸작이 눈앞에 있는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예외인 지역도 있지만 몸을 젖게 할 장맛비가 반가울 마른장마가 이어진다. 좋다고 하자면 억지스러울 장맛비지만 과거에 정선은 윤택하게 빛나는 경물의 아름다움을 그 속에서 발견하고 그려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사도 이와 마찬가지일 수 있지 않을까.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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