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한류경쟁력 훼손 말아야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자칫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기`식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먼저 음악을 비롯한 글로벌 문화산업에서 프로듀서 시스템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K팝의 경우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이것은 K팝 경쟁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세계적 음악 흐름을 파악해 좋은 음악을 찾아 개발하고 이것을 다시 아티스트에게 구현시키는 과정은 자본력만으로는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그야말로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것을 작동시키는 엔진은 총괄 프로듀서와 그를 뒷받침하는 핵심 프로듀서, 그리고 전 세계로 연결된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의 네트워크이다.
SM의 경우 이러한 `문화기술` 엔진을 가동해 H.O.T, SES,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레드벨벳, NCT 등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스타들을 프로듀싱해 지난 20년간 K팝 열풍을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유럽 451명, 북미 201명, 아시아 193명, 호주 10명 등 1000명이 넘는 파트너 프로듀서와 작곡가들로 구성된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 밖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작곡캠프 등으로 교류하고 있는 전 세계 음악인들은 훨씬 많으며 그 수는 K팝 열풍과 함께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경쟁력의 원천은 중국과 같은 나라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다고 쉽게 이뤄낼 수 없다. 하지만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로 구성된 만큼 허물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과 영국이 음악과 영화 등 문화산업 강국이 된 것은 초역량 `톱 프로듀서`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마이클 잭슨 등 수많은 아티스트를 프로듀싱한 미국의 퀸시 존스, 세계 뮤지컬계를 장악하고 있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캐천버그 등 초역량 `톱 프로듀서` 보유 여부가 그 나라의 문화산업 경쟁력을 판가름할 정도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중국·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K팝 성공신화의 원천인 대한민국 톱 프로듀서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우려 사항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장기 투자해야 하는 문화산업 속성과 단기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펀드와의 이해 충돌이다. KB자산운용 역시 단기 배당과 함께 F&B 등 적자사업에 대한 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SM 측은 지금은 적자를 내지만 K팝 브랜드를 토대로 확장해야 할 한류 라이프스타일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K팝 산업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오랫동안 적자를 감내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이다.
1987년 개인사업자로 창업한 SM은 1995년 주식회사 전환 이후 잠시 이익을 냈지만 불법 다운로드와 지속된 투자로 인해 다시 적자 상태에 빠졌다. 이후 안정적으로 영업이익의 열매를 딴 것은 2009년부터였다. 주식회사 출발 이래로 14년, 개인 창업 기준으로는 22년이 지나서야 안정적인 기업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2015년 오픈해 매년 수백만 명의 K팝 팬들이 찾는 삼성동 코엑스아티움(SMTOWN)도 매년 수십억 원이 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랜드마크라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단기이익만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이 사업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류 산업은 결코 자본 집약적 산업이 아니다.
프로듀서와 아티스트들이 협력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창의 집약적 산업이다. 합법의 우산 아래 자본 논리로만 움직이는 재무적 투자자의 `행동주의`가 한류 경쟁력의 원천을 손상시키기보다는 한류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의 창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위기에 봉착한 반도체 산업과 함께 국가 브랜드 가치를 한껏 높이고 있는 한류 산업마저 어두운 그림자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前 한국경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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