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民族史
http://www.mgoon.com/ko/ch/manushya/v/906116?ref=da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허구의 실상 <br /><br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은 없는 역사이고 유령의 국가 입니다. <br /><br /><br /><br />위만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 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br /><br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그의 반려자인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br /><br />숙청하였는대, 이때 연나라 왕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br /><br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br /><br /><br /><br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br /><br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 <br /><br />(BCE194년) <br /><br /><br /><br /><br /><br />[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갈석산부근)의 <br /><br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 하다. <br /><br /><br /><br />따지고 보면 "위만조선" 이라는 나라이름은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성립될 수 없다. <br /><br />위만조선이 아니고 "위만왕조" 라든지 "위만정권" 이라는 언어를 써야 마땅할 것이다. <br /><br /><br /><br /><br /><br />그리고 기자조선은 지금으로부터 약3100년 전 상(은)주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다. <br /><br />주나라 무왕은 동이족의 명재상인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주지육림에 빠진 <br /><br />상(은)나라 폭군 주왕을 방벌하고, 감금되어 있던 상나라 삼현(기자.미자.비간)중 <br /><br />한 사람인 기자를 풀어 주었다. <br /><br /><br /><br />그런데 풀려난 기자는 조국 상나라가 멸망한 것에 절망하여 동방족의 본고장인 <br /><br />"조선"으로 떠나 버렸다. 그때 무왕이 이를 섭섭해 하며 기자를 "조선" 의 제후로 봉했다는 이야기이다. <br /><br /><br /><br />기자조선 역사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br /><br />[송미자세가]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기자어조선" 바로 뒤에 "이붕신야" , 즉 <br /><br />"그러나 신하로 삼지 못했다" 는 말이 나온다. <br /><br /><br /><br />제후도 당연히 신하인데 왜 신하로 삼지 못했다는 것일까? <br /><br />실제로 기자가 새로 정착한 곳은 지금의 하북성 태행산 일대로 주나라와 하등 무관한 <br /><br />고조선 영토였기 때문에 애당초 주나라가 그를 제후로 봉할 수도, 신하로 삼을수도 <br /><br />없었던 것이다. <br /><br />출처:개벽실제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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