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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경쟁서 패배한 유럽

새밀 2019. 4. 18. 09:31

혁신경쟁서 패배한 유럽


지난달 26일 프랑스 엘리제궁에 4명의 국가 정상이 모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파리 방문에 맞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엘리제궁을 찾은 것. 제3국 국빈 방문에 맞춰 다른 나라 국가 정상이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힌트는 찾기 어렵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중국이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의 비행기 총 290대를 350억달러(약 40조원)에 사들인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돈의 힘은 셌다. 더욱이 유럽 각국은 시진핑의 유럽 방문 전후로 반(反)화웨이 전선에서 이탈했다. 미국 주도로 이뤄지던 화웨이 `불매운동`에서 탈퇴한 셈이다.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에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경제 영토를 늘렸다.

실제로 유럽은 미국에 이어 중국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사업에서 전 세계 10위권 내 기업이 하나도 없다. 프랑스 경제잡지 `이노베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10개 중 8개가 미국 기업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들이 그들이다. 중국은 상위 10위권에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보유하면서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처럼 미국에 이어 중국에도 밀리는 유럽은 혁신의 패배자다. 유럽은 특히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덫에 스스로 갇히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갈수록 구글이나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들을 견제하는 태세다. 최근 EU는 구글에 대해 불공정 경쟁 책임을 물어 2조원 가까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온라인 검색 광고에서 자신의 광고를 우선 배치해 다른 경쟁사들의 혁신을 제한하고 소비자들의 편익도 훼손했다는 게 EU 측 논리다. 구글은 최근 2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약 10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사상 최대 금액이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수년 전 유사한 책임을 물었지만 결론은 무죄였다. 구글은 검색쇼핑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도 아니고 검색쇼핑 서비스가 진화한 결과라는 논리로 법의 처벌을 피해갔다. 가령 `CGV`를 검색하면 CGV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곧바로 가까운 CGV 상영관과 상영시간을 보여주면 소비자들도 이익이 크다는 논리였다. 결국 소비자들도 상품과 서비스 혁신의 수혜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셈이다.

같은 이슈였지만 관점은 달랐던 것이다. 유럽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제3국 입장에서 보면 양 지역의 판단 잣대는 공정경쟁 저해 여부보다는 자국 기업 우선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일종의 기술민족주의(Techno-nationalism)이다.

유럽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글 검색에 사용되는 모든 콘텐츠에 대해 원작자에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법안이 최근 통과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두고 유럽 내에서는 물론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다. 원래 법 취지대로 거대 공룡의 폐해를 줄여 경제 내 혁신을 촉진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오히려 특정 국가에서 검색사이트 폐지와 같은 거대 공룡들의 `극단적 선택`이 있을 경우 해당 국가의 중소 저작권자들의 애로가 가중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들의 혁신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규제가 많으면 혁신은 방해받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규제가 늘고 있는 유럽에서 전 세계 상위 10위권 내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단 1개도 없다는 점이 이를 대변해준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이 꼽은 `혁신국가의 비밀`을 보면 혁신경쟁에서 유럽의 패배는 더욱 분명해진다.
△기술 육성에 대한 국가전략과 연구개발(R&D) 투자 △대학 내 상업적 응용연구 촉진 △지식재산권 보호 △ 돈과 인재들이 몰려드는 혁신적인 문화 △능력 있는 이민자 포용 등이 이 연구소가 주장하는 혁신의 조건이다. 이 잣대로 보면 유럽은 미국에 한참 뒤처진다. 미국이 2차세계대전 이후 70년을 준비한 결과다. 한국은 어떤가. 5년짜리 정권이 아닌 20년짜리 정권을 노린다면 지금 실천하더라도 빠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