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의 성세(盛世)/미산 윤의섭
서기 675년 신라와 고구려 부흥군이 연합한 3만의 병력이 당군 20만을 격파한 매소성(연천)전투를 계기로, 당군이 한반도에서 패퇴하면서 삼국시대가 끝나고 한반도에 통일 신라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에 느슨해진 요동지방에 고구려 유민과 주변 소수 민족이 결합하여 발해 왕조를 세우고 요동과 연해주 일원을 다스렸다. 신라와 발해 200여 년간을 남북조 시대라고 한다. 남북조, 고려, 조선, 대한 민국으로 도합 1.300년 간 한반도에 단일 민족 국가로 이어 젔다.
고대에는 중국 시안(장안) 시대의 진, 한, 수, 당 등 한족(華夏)과 요하 유역을 경계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활거였다. 이때 불교의 전래는 국력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면서 통일국가 형성을 촉진 하였다. 금(여진족)이 중국을 통치할 때 요동에 가까운 베이징(연경)을 수도로 삼았다. 중국의 베이징 시대에는 요, 금, 원, 청 등 동북방 동이족이 800 여년을 통치하였다. 이 중간에 한족은 송, 명 왕조로 400년, 현대 중국 100년 도합 1300년이 중국대륙과 한반도가 정립한 시기이다. 성리학은 명과 청 그리고 조선 건국 이념으로 채택한 숭문 문화이다. 동양에 유고 문화가 꽃 피게 된 연유 이다. 이렇게 볼때 중국민족과 동이계의 민족 혈통과 문화는 여러번 거듭하여 겹쳐진 융합성이 있음을 알수 있다.
고대 중국 시안시대에는 영토의 개념이 희박하였다. 군사력 등 문명 유지력을 토대로 시안 중심에서 먼곳 은 통치가 미치지 못하였다. 자연스럽게 변방의 국가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변방 4방을 동이. 북적. 서융, 남만이라 칭하며 변방이 강성하지 못하도록 견제하였던 시대이다. 북방 동이계의 기마군 세력이 강대하여 이들 나라(흉노, 고구려)가 중국군과 다툼이 잦았으며, 만리장성도 이러한 배경으로 한족(진, 명) 왕조때 북방 동이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수축한 것이다.
여진족이 경영한 청대에 이르러 만주, 내몽고, 신강, 지벳트, 광동. 대만 까지 광활한 강역을 확보하였다. 서양의 대항해시대에 시베리아 흑룡강으로 동진하던 러시아군과 충돌하고 서양식 국경 조약을 도입하였다. 한족은 중원을 수비하는 시대였는데, 기만족의 특성이 융합된 원, 청대에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중국은 청대의 영토를 그대로 이전한 것이다. 현대 중국은 다민족이 다층 중첩 융합 된 국가이다. 현대 베이징 언어는 서융과 만주어의 합성어 성격이 짙다.
현대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연구사를 발간하여 만주 고토에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내 소수 민족 정부 였다고 격하하여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것은, 현대 중국 영토내에 포함된 여러 소수민족을 통합 하려는 저의 에서 나온 것이다. 이 동북공정을 계기로 치우(蚩尤)를 중국의 3조(황제, 염제, 치우)에 포함시켰다. 중국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치우를 동이의 군주인데 황제와의 전투에서 사로 잡아 죽였다고 기록 하였다. 2.000여 년간이나 중국 역사에서 동이 오랑캐라며 격하하던 치우를 갑자기 바꿔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대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국 역사서는 고대의 사기(史記)부터 현대의 동북공정까지 일관되게 이민족이 중원을 지배한 것을 빼거나 축소 기록하여 중국 역사 중심에서 제외 하였다. 이같이 사실의 왜곡이 심하여 반쪽 역사라는 비평을 받는다.
삼국시대 백제가 멸망할때 의자왕 이하 1만3천 여명의 무사, 지식인, 기술 기능인을 당(시안)으로 데려갔 으며. 고구려 멸망할 때에는 보장왕 등 무사, 지식인, 기술 기능인, 여인 등 20만 인을 당으로 데려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은 전승하며 국토의 확장이 목적이 아니고 변방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중원 지방의 군사 인력 확보와 문명인 수입으로 기술 수준 향상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이해할수 있다.
요, 금, 원, 청 등 동이계 국가가 중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후방의 한반도 세력의 협조가 필수적이므로 고려와 조선의 존재가 힘이 실렸고, 그 결과 대륙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우리 민족성을 존속하었다. 고대 삼국시대 부터 한반도 문화를 전수 받으며 일본이 수혜를 입었음에도 임진왜란시에는 조선 지식인 수십만과 기술자, 여자를 데려간 것도 조선의 선진 문화 이전을 목적으로 중국의 행태를 모방한 것이다. 일본이 서양 문명 수입후 왜정시에는 역으로 한국 민족 문화를 말살시켜 일본에 동화 하려다 패퇴 하였다. 왜정 식민시절에 반 강제로 한민족은 만주와 연해주 일본 등지로 수백만이 이주하는 수난도 있었다.
1945년 광복후 외세에 의해 분단한 대한민국은 공산화 침략(6.25전쟁)을 저지하고, 구미식 자유 민주 주의 를 채택한 경제 건설과 민주화에 성공 하였다. 미, 유엔의 지원과 자력 창조 노력으로 무역국으로 도약하였고, 반세기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기적을 이루었다. 광복후 급속한 기독교 전파는 기존의 유, 불교 와 함께 한국의 다종교 문화의 융화 발현으로 국가발전의 동력이 되지 안았나 사료된다. 위와 같이 유구한 역사와, 동북아 지정학적 환경이 우리나라의 정체성 유지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분단의 갈등과 주변 4강(미.중.일.러) 세력의 냉엄한 견제 속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은 그동안 확보한 산업 선진 기술을 토대로 발빠른 4차 산업 혁명의 도약 기회를 얻을 것이다. 신기술로 응용 효율이 높아지며 자주 인권의 신장이 북에도 파급되면서 통일의 위업이 앞당겨질 것이다. 현대 100년 간 국운의 쇠함을 극복하여 온 찬란한 건설 한국은 대국의 손아귀에서 조종을 받지 않는 자주 독립 국가로서 동북아 주변 4강+1강=5강 의 형세를 갖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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