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의 자가 수필

오산의 철도를 옮긴 이야기

새밀 2017. 12. 10. 18:26



오산의 철도를 옮긴 이야기/미산 유의섭


광교산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비산 비야의 넓은 구릉을 지나면서 끊어질 듯 다시 솟은 낮은 산으로 이어

진다. 동은 기흥 동탄, 서는 수원 반정 뜰을 이루며 이어진 용맥이 붓끝 같이 뾰족하게 솟은 필봉산에

머문다. 그 앞에 펼쳐진 넓은 뜰에 아름다운 내 고향 오산이 있다. 오산 烏山이란 이름은 태초 고조선에

하늘과 교신을 위한 태양새 삼족오 太陽鳥 三足烏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확실한 고증은 역사가의 몫으

남아 있다. 오산은 조선조에 궐리사를 세우며 1차 교육도시로 발전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다

오늘날 오산은 인물들이 배출하며 교육 명품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데 필봉의 기상이 때를

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필봉산은 높지 않으나 아름답게 솟은 산으로 이곳에 오르면 4방 30km 안에

탁 트여 북은 수원 주변의 거대한 반도체 전자 산업 단지가 흰구름처럼 첩첩하고, 그 옆은 동탄도시의

높다란 아파트 군집이 이쪽을 향한다. 남을 보면 드넓은 들 평택 신도시의 웅장한 꿈 트림에 새잠을 깨는

듯 하고, 멀리 황해의 훈풍이 끊임없이 흘러드는 기분을 느낀다. 붓끝 봉우리를 무디게 하지 않도록 가꾸고

오산 발전을 조감한다.


오산에 새들이 운집하여 귀히 여긴 풍습에서 오산 烏山으로 주민이 부르고 전승된 것 아닌가 한다.

1900 년초에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놓으면서 주민의 의견을 물어 오산역 烏山驛이라 명명하게 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는 수원군 성호면 소재지였다.


그 때 건설한 오산 북부 삼미동 경유 노선을 보면 하선을 먼저 건설하였는데 곡괭이 삽과 등짐 노예 노동

으로 조선인을 동원하여 험난하였던 공사였으므로 산을 돌아 곡선형 단선을 만들었고, 10년 후에 복선 공사

는 터널 기술을 이용하여 기존 노선과 떨어진 곳에 건설함으로써, 상하행 노선이 분리되어 삼미동 마을을 

삼 등분 해 놓았다. 그 결과 고개와 곡선을 스팀기관차가 지나면서 힘이 겨워 칙칙폭폭 거북이 운행을 하였고

연기를 뿜어내어 유서 깊은 농촌을 100여 년 간이나 불안하게 하였다.


1990년대 수원- 천안 간 복복선 전철 공사 현지 측량작업이 진행될 때, 내 고향 오산 삼미동에도 노선을 따라

증설 측량이 시행되어 주민이 알게 되었고, 대전 철도 차량창에 근무 중인 나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 졌다.

나는 즉각적으로 오산 북부의 불합리한 철도 곡선형을 떠올리고 이 기회에 선형을 개선하도록 철도 당국

알려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철도 건설 당국에 '내 고향 오산 북부지구 굴곡 노선이 취약구간이라'는 것을 알리

고, '직선화 노선으로 전환' 할 것을 제의하였다.


내 제의를 전화로 들은 즉시 설계 담당이 현장 조사 결과 병점역~오산역 직선화 노선으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굴곡 노선의 직선화로 변경 조치하였다. 곡형선 구간을 직선화하는 경부선 라인

직선화 개념에 일치하기 때문에 곧바로 노선 변경하게 된 것이다.

전화 한 통화로 저들이 알아서 개선 조치하는 것을 보고 100년간의 체증이 풀리는 듯하였다. 아울러 변경

된 노선은 세교동과 수청동 중심(북오산 중심)을 통과함으로써 도시 중심지 전철역사가 위치하는데 유리하게

되였다.


그 후 병점~오산 중간 정거장 건설 위치를 죽미령에 1곳 설정한 것을 보고, 나는 오산시장 유관진 씨와 기획

관리관을 만나 철도청에 '죽미령역 보다 세교역, 수청역 2개소 설치'를 요구하라고 제의하였다. 세교동과

수청동에 오산 도시 계획이 수립되었으니 2개소에 역사 설치 요구하도록 철도청에 제의케 하였고, 이로써

오늘날의 세마역과 오산대역이 건설되었다. 서동탄역을 추가하여 시에는 4개의 역사가 있다.

오늘날 오산 도시발전의 교두보로서 크게 기능하고 있는 이 역들은 이 지역 오산인들의 뜻으로 이룬 것이다.


나는 유년시절 수원북중학교에 가기 위하여 철도 변 4km를 걸어서 병점역 새벽차를 닸고, 9.28 수복 후 

철도파손으로 불통하여 오산 외삼미에서 수원북중학교까지 15km를 걸어서 고난의 통학을 하였다. 성장 후 철

도에 근무하면서 오산 북부의 구브러저 있는 철길 애환이 주민뿐 아니라 철도 운행에도 불리하다는 것을 마음

으로 간직하고 있던 것을 해결한 셈이다.


그후 나는 이러한 사실을 내고향 오산의 유지들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전 시의원 윤한섭씨에게 이야기 하였

더니 나에게 오산시장(이기하) 감사패를 수여하였다. 나의 자랑 이야기가 아니라 오산시의 역사 스토리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 한토막이다. 철도 이설을 하는데 있어서 철도와 지역 기관장과 현명한 협치를 통해 잡음

없이 지방의 큰 예산 안들이고 국가 건설사업 일환으로 선순환한 사업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