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재 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21년 01월 12일
일반적으로 ‘정사(正史)’란 특정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을 말한다. 단순히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후세 사람들로부터 그 내용의 공신력을 인정받은 역사서들을 가리킨다. 중국에서 정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한나라 무제(武帝)까지의 역사를 다룬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위시하여 청나라의 정사인 『청사고(淸史稿)』까지 총 25종이 있다.
그러면 중국 사람도 아닌 우리가 왜 남의 나라의 정사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조선전(朝鮮傳)” 또는 “동이전
(東夷傳)”이라는 이름의 매개체를 통하여 ‘타자(他者)’의 눈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기』의 〈조선열전(朝鮮列傳)〉은 아주 간략하게 작성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파편화된 언어와 맥락들 속에서 위만(衛滿) 이전의 고조선의 연혁과 위치, 위만 당시의 고조선의 강역, 그 손자인 우거(右渠)가 항전을 벌였던 왕험성(王險城)과 패수(浿水)가 자리잡았던 공간의 지형, 나아가 그 뒤에 설치된 ‘한사군(漢四郡)’의 좌표까지 시뮬레이션해 볼 수가 있다.
이렇듯, 중국 정사 원전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해도 그동안 우리 뇌리에서 잊혀져 있던 역사적 진실들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2천여 년 전의 한대부터 고조선·삼한 등 우리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은 중국의 정사는 사실상 우리 고대사의 연구, 역사지리 고증, 고대어 발굴 등 역사적 진실의 재발견에 대단히 중요한 참조자료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1』은 중국정사 25종 가운데 가장 먼저 씌어진 〈사기〉〈한서〉〈삼국지〉〈후한서〉의 조선열전, 조선전, 동이전, 동이열전의 원문을 번역하고, 이에 대한 중국역대 학자들의 주석을 모두 아울러 번역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한국인 학자의 입장에서 역자의 주석을 달았다. 앞으로도 이 작업은 25사 전부를 대상으로 지속될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하여 고대사 자료가 부족한 한국사 입장에서는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특히 기존의 중국정사 역주본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작업(잘못된 원전해석, 오독, 오기 등)을 행함으로써 이후 중국정사 번역에 대한 국사학계의 자성과 시정을 유도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였다.
이 책의 역자는 초기 중국 정사이자 고대사 연구의 필독서인 ‘전 4사’의 〈조선전〉과 〈동이전〉, 그리고 한대로부터 청대까지 역대 중국 학자들이 붙인 주석들을 몇 번이나 정독하고 분석한 결과 조선의 반도사관의 영향을 받은 청대 학자들의 주석들을 제외한 중국의 역대 역사가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요동, 즉 지금의 하북성 동북부와 요서지역에서 고조선 중심지의 좌표를 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고조선의 왕험성 또는 고구려의 평양성이 요동에 있었고, 패수가 한반도의 청천강이 아니라 동쪽으로 흘러 동쪽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라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시원과 실상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중국인의 역사기록과 중국 당대학자들의 주석연구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문성재 박사는 1988년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에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1994년 박사과정 이수 후 국비로 중국 남경대에 유학해 1997년 <심경 극작 연구>로 박사 학위(문학)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근대 중국어, 즉 당·송·원·명·청 시대의 조기백화(早期白話) 및 몽골어로 연구 범위를 확대해 2002년 서울대에서 <원간잡극 30종 동결구조 연구>로 박사 학위(어학)를 받았다. 현재는 동 대학에 출강하면서 번역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는 ≪중국 고전 희곡 10선≫, ≪동아시아 기층문화에 나타난 죽음과 삶≫, ≪고우영 일지매≫(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중문), ≪도화선≫(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경본 통속소설≫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희곡사를 다룬 <현대 중국의 연극 무대: 사실주의에서 표현주의로>, <중국의 종교극 목련희>, <명대 희곡의 출판과 유통>, <안중근 열사를 제재로 한 중국 연극 “망국한전기”> 등과, 중국어와 알타이어의 관계를 다룬 <원대 잡극 곡백에서의 ‘來’>, <근대 한어의 ‘家/價’ 연구>, <원대 잡극 속의 몽골어>, <원대 잡극에서의 정도부사 ‘殺’용법>, <근대 중국어의 S’O'(也)似 비교구문 연구>, <‘似’류 비교구문의 역사적 변천과 문법적 특징>(중문) 등이 있다.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