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새밀 2021. 2. 21. 09:17

“2030년대, 미국 없는 세계와 1870년대 같은 지정학 도래” [책에서 만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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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7 07:30:00 수정 : 2021-02-17 00: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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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냉전과 더불어 시작된 시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 앞으로 세계는 뒤죽박죽이었던 2000년대 초나 가공할 잠재력을 지녔던 1950년대보다는, 1930년대 경제상황을 배경으로 1870년대의 대격돌과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참혹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막바지에 다다른 시대가 남긴 찌꺼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게 된다.”

 

--Peter Zeihan(2020). Disunited Nations.; 홍지수 역(2021).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서울: 김앤김북스. 22쪽.

 

세계적인 지정학 전략가 자이한은 신간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에서 2030년이 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구축한 세계 질서는 붕괴되고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닐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2030년대가 되면 미국이 세계의 중심에서 스스로 몸을 빼고 자국 이익에 집중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미국 없는 무질서한 세계’가 동터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1930년대적 경제 상황을 배경으로 선발 강대국과 후발 강대국간 지정학적 대립과 갈등이 극대화한 1870년대의 대격돌이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다.

 

책의 분석과 전망을 좀더 살펴보면, 자이한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세계 질서가 후퇴하면 정치적 통일성을 잃어버리고 규모의 경제도, 지속성도 잃게 돼 급속하게 과거로 되돌아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미래의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생각은 유토피아적 환상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래에 필연적으로 지역 맹주라도 될 거라는 시큰둥한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적 실존과 정치적 결속력을 뒷받침하는 현재의 세계 질서를 지키거나 유지하거나 대체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아시아에선 일본이 손을 떼는 미국을 대신해 우두머리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힘의 공백을 메울 자본, 해군, 기술력을 잘 갖추고 있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에선 프랑스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와 독일은 쉽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중동에선 터키와 이란이 주요국으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인용 출처나 참고문헌이 거의 없지만, 만약 그의 전망이 합리성을 갖고 있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 참으로 섬뜩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냉전체제에 조국이 분단되고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냉전체제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측면 또한 분명히 있었다는 점에서 각자 도생과 새로운 지정학 시대의 도래는 쉽지 않는, 엄청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1870년대 지정학을 배경으로 선발 강대국과 후발 강대국간 대립과 갈등 속에서 한반도는 길을 잃어버리고 실패와 고난의 형극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작금의 상황은 힘을 부쩍 키우는 중국에 너무 과도하게 경도되는 것도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너무 경시하는 것도 옳지 않고,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국뽕’에 취할 여유도 없어 보인다. 우리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2021.2.17)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