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는 몰락할 것" 잡스 경고 무시해 몰락한 '이 기업'
우리는 매우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간다. 6개월 전, 한국이 일본과 무역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일어난 사건인지, 그 사건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 과정이 ‘센스메이킹(Sensemaking)’이다.
한일 무역분쟁
경영자는 불확실한 세상을 100% 정확하게 판단, 예측할 수는 없지만 센스메이킹을 통해 현실을 ‘가장 그럴듯하게’ 이해하고 베팅할 수 있다. 센스메이킹을 키울 수 있는 5가지 방법을 담은 DBR 282호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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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익 외에도 데보라 안코나(Debora Ancona) MIT 교수 등 센스메이킹에 대한 정의를 내린 학자는 매우 많다.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대목은 조직 내의 센스메이킹은 조직원들이 혼란스럽고, 놀라운, 많은 경우 예기치 않았던 위기 사건과 마주할 때 중요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블랙 스완'과 마주할 때 많은 개인과 조직이 센스메이킹에 실패한다. 『블랙 스완』은 2007년 출간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책 제목이다. 탈레브는 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서 ‘블랙 스완을 ‘좀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중대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블랙 스완(Black Swan)
유럽인들은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탐험가 윌렘 데 블레밍 일행이 호주 서부에서 검은 백조를 데려오기 전까지 지구상의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처음 검은 백조를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즉, 블랙 스완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 밖의 사건을 지칭하는 메타포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은 일종의 극단값(outliers)이라고 주장한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 있는 관측치’를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다.
센스메이킹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사례만 봐도 그렇다. 출시 직후 IT 업계의 전반적인 반응을 생각해본다면,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은 일종의 극단값이었다. 당시 MS CEO였던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는 아이폰 발매 직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00달러에 플랜에 가입하면 보조금 지급이라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전화기일 듯한데!
게다가 자판이 없으니 그다지 좋은 이메일 기기는 되지 못할 것이고..

스티브 발머 전 MS CEO
500달러나 되는,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는, 전면 거의 전부가 화면인 전화기는 발머의 경험에 없는 '극단값'이었다.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는 이 동영상은 아마도 스티브 발머 생애 최악의 흑역사일 것이다. MS뿐 아니라 당시 모바일 시장을 주무르던 노키아와 모토로라, 그리고 PC 업계의 선두주자들인 델(Dell)이나 HP 역시 이 자그마한 기기의 파괴력을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아이패드를 선보이는 스티브 잡스
3년이 지난 2010년 6월, 스티브 잡스는 이번엔 아이패드를 선보였다. 그리고 아주 도발적인 예언을 한다. 앞으로 PC의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 PC 판매가 시작된 이후 PC 산업은 오로지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린 성장산업이었기에 그의 예언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패드 등장 후 불과 2년 만에 PC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2년 2.5% 감소에서 시작해 2013년 한 해에만 무려 11.5%의 감소를 기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가 모바일 시대로의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경영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델, HP, 그리고 MS도 상당 기간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
몰락하던 MS를 부활시킨 주인공은 발머의 퇴임 후 새로 부임한 사티아 나델라(Satya Narayana Nadella) CEO다. 나델라는 잡스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포스트 PC 시대에 진입한다고 판단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업이 앞으로 대단히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업을 이끌어 왔다.
그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MS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켰고 주가를 네 배 가까이 상승시켰다. 잡스나 나델라는 참으로 센스메이킹을 잘하는 CEO였고, 그 결과 자신들의 주장을 실천에 옮기면서 소속 기업의 주가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센스메이킹은 결국 현실을 어떻게 ‘해석(interpretation)’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실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추정(presumption)’들이 그 해석을 방해하거나 제약한다. 만약 잘못된 추정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 자체로 현실에 대한 해석은 물론, 센스메이킹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센스메이킹 능력은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1. ‘현재진행형’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라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사진, 즉 스냅숏이 아닌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한다. 따라서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는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 판단을 못해서 무너졌다. 앞서 말한 발머의 사례가 그렇다.
PC 시장이 곤두박질치던 때에도 발머는 여전히 PC가 대세라는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많은 기업이 이미 정한 결정을,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고집하다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상황이 바뀌면 해결책도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2. 정보의 소스는 다양해야 한다
2003년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A’s)의 단장(현재는 부사장) 빌리 빈(Billy Beane) 이야기를 그린다. 예산이 경쟁 구단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값싼 선수들로만 팀을 꾸릴 수밖에 없었음에도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A’s는 빌리 빈이 단장 또는 부사장으로 있는 동안 무려 여섯 번의 지구 우승(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과 여섯 번의 지구 준우승(그중 세 번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했다.
그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선수의 능력을 기존에 사용하는 기준이 아닌 새로운 통계 지표로 선발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하지만 '싸고 좋은 인재'를 획득하는 경쟁력의 핵심은 이게 끝이 아니다. 세이버메트릭스를 바탕으로 한 선수 선발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야구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통계 자료가 많이 양산되는 운동이기에, 이 빅데이터는 모든 이에게 공개돼 있다.

오클랜드 A’s 선수들
빌리 빈은 그 비결을 '정보를 가능한 많이 모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 예컨대 선수의 친구들, 선수의 가족 정보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선수의 인성을 나타낼 수 있는 교우 관계라든가 가족 관계를 직접 파악함으로써 통계적인 지표만이 아니라 성실성이나 성격 같은 중요한 덕목들을 선발기준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기업 조직이라면 소비자, 공급자, 경쟁자, 내부 다른 부서의 자료뿐 아니라 1, 2차 자료, 즉 컴퓨터의 통계자료와 개인적 인터뷰 자료를 다 섭렵해야 제대로 된 센스메이킹을 할 수 있다.
3. 현장에서 보라
데보라 안코나 MIT 교수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의 예를 들어 현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어느 해 아이디오는 병원의 응급실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들은 병원 응급실 디자인을 위해 응급실 담당 외과의사들과 마취 의사들, 수간호사를 비롯한 간호사들, 심지어 응급실로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911(우리의 119) 구급 대원들에게 응급실로 들어오는 공간의 동선 관련 질문을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용자, 즉 환자의 인터뷰가 빠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팔다리가 으깨지고 머리에서 피가 나고, 의식을 잃은 환자들에게 "여기 응급실 이용해보니 어떠세요?"와 같은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궁리 끝에 아이디오가 사용한 방법은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 이마에, 그 보호자의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응급실에서의 10시간, 그 시간 동안 환자가 구경한 것이라고는 응급실의 천장뿐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가 일어나서 돌아다니며 다른 환자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의사에게 다가가 “선생님, 저 언제 퇴원할 수 있죠?”라고 묻고 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이전까지는 아무도 응급실 천장 디자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을 본 디자이너들은 응급실 천장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고 이곳에 중요한 시청각 자료들을 비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응급실에서의 환자의 경험’이라는 생생한 1차 자료가 없는 상태의 응급실 디자인은 상당히 맥 빠진, 사용자의 측면에서 볼 때는 낙제점 수준의 디자인이 됐을 것이다.
4. 팀워크를 위한 문화를 만들어라
기업의 센스메이킹은 많은 경우 개인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다. 기업의 각 레벨에서 내려지는 결정들은 많은 조직원의 인풋과 암묵적인 동의, 지지 없이는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 앞서 센스메이킹을 잘한 리더의 예로 MS CEO 사티아 나델라를 소개했다. 표면적으로 MS의 부활은 PC 소프트웨어 중심의 회사를 모바일과 클라우드 쪽으로 전략 변화를 준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성과 관리의 방법과 기준 변경을 통해 기업 문화를 바꾼 것이다.
나델라가 주도한 성과 관리 방법은 코넥츠(Connects)로,구성원 간의 협업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나델라의 취임 전까지 MS의 성과평가 시스템은 스택 랭킹(Stack Ranking)이라는 상대평가 시스템이었다. 10명의 평가 대상 팀원이 있다면 그중 두 명은 무조건 고성과자, 7명은 그저 그런 평균 레벨의 성과자, 1명은 저성과자로 분류돼야만 했다.
이는 팀원 간 협조가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 방법이었다. 실제 2012년 『배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의 전직 MS 엔지니어는 "내가 MS에서 배운 최고의 스킬은 동료들이 내 랭킹을 앞지르지 못할 만큼의 정보만 제공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는 것처럼 예의 바르게 보이는 것이었죠"라고 고백했다.
나델라는 취임 이후 팀원 평가 시에 절대평가 제도뿐 아니라 평가 기준 중 하나로 동료와의 관계를 도입했다. 팀원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내가 팀원의 업무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주요 지표다. 2018년부터는 ‘비판’이라는 뉘앙스가 강한 ‘피드백’이라는 용어 대신 ‘퍼스펙티브(관점)’란 이름으로 동료의 업무를 칭찬하거나 건설적인 제안을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동료들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되 공격적인 언사를 자제함으로써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지도록 한다.
5. 100% 확신이 아니라 그럴듯한 가능성에 걸어라
센스메이킹은 100%의 확신이 아니라 ‘그럴듯함(plausibility)’에 베팅하는 것이다.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 펜실베이니아대 석좌교수는 2011년 이후 연구 동료인 바바라 멜러스, 돈 무어와 함께 예측력과 판단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Good Judgement Project)를 전개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 중에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진 그룹과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그룹으로 나눠 누가 예측력이 더 뛰어난가를 분석한 대목이다.
결과는 신중한 태도를 가진 그룹이, 미래에 대해 자신만의 확신을 가진 그룹에 비해 훨씬 더 예측 정확도가 높았다. 이 신중파들은 성실하고, 상세한 정보를 모았으며, 자기와 다른 시각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노력을 보였고, 자신의 접근이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방향을 바꾸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100%의 확신보다는 자신들의 정보를 십분 활용해 확률에 따라 그럴 가능성이 높은(probabilistically) 것에 베팅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현실은 100%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비교적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100% 확신보다는 그때그때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잘못된 확신을 갖는 것보다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끊임없는 의심이 필요하다.
센스메이킹은 ‘맥락적 합리성(Contextual Rationality)’에 기반한 것이다. 맥락이 바뀌면 우리가 앞서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해결책이 더 이상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맥락은 기업 외부의 정치·경제적 환경뿐 아니라 기업 내부 환경인 조직문화, 보유 자원의 종류와 규모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센스메이킹을 잘하는 조직이라면 변덕쟁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어렵더라도 처한 상황과 맥락에 맞게 빠르게 전략을 변화시키는 기업만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82호
필자 김양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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