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五子之歌<오자지가>

새밀 2019. 10. 6. 10:35

五子之歌<오자지가>


신경진 기자 “백성은 가까이할 수 있지만 얕잡아 보면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民可近 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 중국의 역사는 독특하다. 대개 과거는 옳고 현재는 부족하다 여긴다. 정치가 항상 부흥(復興)·복고(復古)를 꿈꾼다. 요(堯)·순(舜)·우(禹)·주공(周公)·공자(孔子)로 이어졌다는 성인 정치의 유산이다.
 
성군인 우왕이 세운 하(夏)나라는 손자인 태강(太康)이 망쳤다. 요임금의 신하였던 후예(後羿)가 쫓아냈다. 태강의 다섯 동생이 탄핵당한 군주를 꾸짖은 노래 ‘오자지가(五子之歌)’가 『상서(尙書)』에 전한다. 백성이 굳건해야 나라가 안녕하다는 첫째 동생의 노래는 민본정치의 뿌리가 됐다. 둘째는 왕의 욕심을 꾸짖었다. 셋째는 “오늘 왕도를 잃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혀 끝내 멸망하는구나”라며 한탄했다. 넷째는 천하의 군주였던 할아버지가 만든 법규와 경제를 거덜 낸 태강을 비난했다. 다섯째는 “(형은) 낯이 두껍고 부끄럽고 창피하다(顔厚有忸怩·안후유육니)”며 후안무치(厚顔無恥)를 탓했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하본기’에 “태강실국(太康失國·태강이 나라를 잃었다)” 네 글자로 기록했다.  
     


‘오자지가’가 꾸짖은 후안무치 정치가 21세기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 검찰이 뒤엉킨 다툼은 역사에서 낯설지 않다. 『사기』 ‘혹리(酷吏)’ 열전에는 황제를 등에 업은 사법 관리가 여럿 등장한다.
 
어릴 적 곳간의 쥐새끼 판결문으로 이름을 떨친 장탕(張湯)이 대표 인물이다. 범인을 알고 고발하지 않으면 같은 죄로 처벌하는 견지법(見知法), 탈세를 고발하면 몰수액의 절반을 포상한 고민령(告緡令)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민정수석 비슷하게 황제의 친인척 비리를 다뤘다. 취조 대상이 황제가 처벌하려는 인물이면 가혹한 부하에게, 석방하려는 사람이면 마음씨 좋은 부하에게 판결을 맡겼다. 유학에 심취한 한무제(漢武帝)의 취향에 맞춰 판결문에 공자 말씀을 빼먹지 않았다. 장탕의 농단은 앙심을 품은 정적의 공격에 무너졌다. 믿었던 황제의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포폄(褒貶)의 명수였던 사마천은 장탕 이후 법은 조밀해졌지만, 정치가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조국(曺國) 사태를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태강·장탕과는 다르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