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동아시아 문자의 기원과 조선의 유래

새밀 2019. 7. 13. 09:57

동아시아 문자의 기원과 조선의 유래|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역사님 | 조회 296 |추천 0 | 2007.01.08. 13:45
   

다들 아시겠지만 문자의 발생과 사용은 그 집단이 문명사로의 또다른

새로운 전환점임에 매우 중요한 문제중 하나이고 보면

우리의 역사가 유구하다고 하면서도 지금에 와서 도리켜 보면 한자적 문화권속에

그것이 우리의 일방적 유입인지 오늘날 한족의 말처럼 인식되어 오고 있는 시각이 바른지에

대한 의문은 우리 고대사의 또 다른 상당한 숙제와 중요한 연구과제 인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링크 한글 올려 봅니다.

< 문자(文字)의 시작은 지금 중국 산동성 곡부에서 나라를 열고 그 문자를 만든 신농(재위 서
기전 2517~2475)이라는 이름 글자인 "." 아래 아, "○" 둥근 원자와 "l" 세로 작대기자로 부터 시작되고 있다.
최초의 문자는 이 시대 주역들의 이름과 관직의 명칭, 통치하는 봉읍(封邑)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 이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수상(首相)이니 대감(大監) 등 우리가 무심하게 쓰고 있는 많은 단어의 유래를 명확히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삼황오제시대 220년간, 9대의 임금의 정치상황을 소상하게 밝혀냄에 따라 이 시대의 인물들이 옛 조선이라는 나라의 주역들이라는 것, 그 정치상황의 전개과정에서 우리의 천문과 민속, 고고학 그리고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던 차문화 등 기층문화의 비밀이 거짓말 같이 술술 풀리고 있다.

② 이 시대는 푸나루아(punalua)라는 특이한 모계제(母系制) 사회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두 사람의 남편과 두 사람의 부인이 한 가정을 이루는 양급제(兩級制)시대로 재위는 사위에게 넘겨주던 때였다. 결혼은 양대세력인, 신농과 황제계열이 서로 누비사돈이 되어 재위는 신농계와 황제계가 서로 바톤을 주고 받던 때였다. 따라서 신농계열은 신농, 황제계열은 황제가 아니라 서로 외가가 되어 철저히 혈연으로 맺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시작을 철저하게 이(夷)와 하(夏)로 분리한 시각은 후대 사가들의 조작임이 들어나고 있는 것 또한 특이하다.

③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자의 근원은 신농계의 언어인 우리의 말로써 만이 그때의 글자를 풀 수 있는 열쇄가 된다는 점에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즉 이 시대의 문자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말이 아니고는 중국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라는 점이다.

④ 그 연원을 알지 못한채 막연하게 부르고 있는 조선(朝鮮)이라는 나라 이름이 전욱고양(?頊高陽)임금의 이름자에서, 한국이라는 한(韓)이 바로 순(舜)임금의 이름, 위(韋)에서 나왔음을 밝혀 지고 있다.

⑤ 특히 중국인들이 멸시해 부르는 오랑캐 이(夷)가 하화족(夏華族)의 시조인 우(禹)임금의 이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글자가 바로 신농계에서 발음을 하고 있는 사람 인(人), 임금이라는 임(壬)이 변했다는 사실.

⑥ 그 뿐 아니라 "솟대"며 세발달린 까마귀 "삼족오", 여자들이 시집갈 때 이마와 뺨에 찍는 ?연지 곤지?, 머리위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마"와 시집갈 때 타고 가는 ?가마?, 죽어서 타고 가는 ?상여 가마?, 베일속에 가려져 있는 ?난생설화?의 비밀 등 기층문화를 속시원히 풀어 내고 있다.>



고대 문자를 통해서 본 한민족의 위상




1. 동양문화의 핵심어 - 한


현대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두뇌가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으며 좌, 우뇌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런데 일단의 문명연구가들이 이 뇌이론을 도입하여 인류가 이룩한 문명에 적용해보니 신기하게도 뇌이론과 문명의 특성이 동일함을 알게 되었다.
이 뇌이론을 지구의 문명에 적용해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뇌이론이 그대로 문명사에도 적용이 되는데, 서양의 문명이 좌뇌적 특성을 그리고 동양이 우뇌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한편 우뇌는 또 그 안에 좌뇌적 특성과 우뇌적 특성을 가진 부분으로 계속해서 나뉘어지며 좌뇌 또한 그러한데 인류의 문명도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동양안에 서양적인 문화와 동양적인 문화로 또다시 반복해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프랙탈현상이라고 한다.
*동양적 우뇌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이론이 프랙탈이론이며 프랙탈이론의 동양식 표현이 ‘한’


2. 한과 한민족


동양문명의 핵심어를 ‘한’이라 한다. 하나의 단어가 80여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동양의 역사를 ‘한의 역사’라고 말하는데, 동양 가운데서도 노른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나라가 우리 한국이고 그 한국의 국민들을 한민족이라 부른다.
-그들의 나라이름 : 한(桓, 韓, 漢)
-그들의 통치자의 이름 : 한(汗, 韓, khan, 칸)
-그들의 하늘 : 한(하늘)
-그들의 신 : 한(하느님)
-그들의 조상 : 한(할아버지, 아버지)
-그들의 민족 : 한민족(韓民族), 한겨레
-그들의 밝음 : 한(환, 해, 하)
-그들의 문자 : 한(한글, 한자)
-큰 것도 한, 작은 것도 한, 깊은 것도 한, 많은 것도 한, 시작도 한, 끝도 한, …


우리는 이렇게 ‘한’과 어울려 나고 생활하며 그리고 죽어서도 ‘한’의 영역에 머문다. 시작과 끝을 동시에 ‘한’이라고 말하는 민족, 크고 작은 것을 ‘한’이라는 용어 하나로 동시에 해결하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 한민족 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 한민족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일만 년을 수준 높은 정신문화를 창조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부조리하게 생각하고 불편한 것으로 생각한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 즉 서양식 가치관이었다. 동양에는 동양식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은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동양의 여러 문화를 상처내기 시작하였다.
서양식 합리주의를 내세워 동양적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매도해 버리고는 마치 쓰레기를 청소하기라도 하는 양 우리 산천의 한적인 문화를 일거에 훼손하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는 부화뇌동한 어리석은 한국인이 많이 있었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역사의 정의


대체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역사’라고 부른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정치가 걸어온 길은 정치사, 종교가 발전하면서 남긴 발자취는 종교사, 음악사, 미술사 … 어는 분야건 그 분야가 걸어온 발자취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정리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존재가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대체로 ‘역사’란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인 정의는 조금 구체적인 기준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 발붙이고 살았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또 그 많은 일상사를 어떻게 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을 정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자로의 기록’이다.
즉 사람의 태고로부터의 오랜 발자취 가운데 적어도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역사’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의 사람의 발자취는 ‘선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역사’ 성립의 제1조건은 ‘문자’의 사용 유무에 있으며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을 ‘선사(先史)’로, 문자사용 이후를 ‘역사(歷史)’로 호칭하였으므로 역사란 ‘사람의 발자취 중에서 문자로 기록된 것’이라고 다시 정의할 수 있겠다.


4. 문자-동양문자의 대표적 한자(桓字, 韓字, 漢字)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사 유적지가 있어서 상고시기의 우리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지만 그러나 당시인들의 실상을 기록해서 전해주는 바가 없으므로 대부분 그럴 것으로 추측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고대를 이해하는데는 그래서 소설가와 같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인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문자의 사용은 언제부터일까? 현재 동서양에서 각각 사용되고 있는 중심언어를 살펴보면 그 기원을 알 수 있을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 문자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역사의 기원을 살피려 한다.
우리 문자와 관련해서는 심각한 오해의 늪이 펼쳐져 있다. 그것은 동양 고전을 담고 있는 주요 문자가 ‘한자’인데, 이 한자가 소위 ‘중국글’이라는 오해가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글인 ‘한글’이 있으므로 한글 주로 사용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극성스런 한글옹호론자들은 ‘한글전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예를 들어 2개의 문자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문자를 배우는 것보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므로 짧은 인생을 즐기다 가려면 문자 배우는 시간만이라도 절약하자는 실용주의에 입각한 주장이라면 그나마 눈감아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한자가 중국글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배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한자도 한글도 모두 우리 선조가 만든 것으로 우리 조상은 소위 암글인 한자와 양글인 한글을 동시에 만들어 사용하므로써 동양의 역사와 문화와 사상을 창도한 빼어난 문화민족인 것이다.
이제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그 속에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직접 한자의 세계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1)한자의 기원과 명칭


우리가 통칭해서 ‘한자(漢字)’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명칭부터 다시 정리가 되어야 한다. 한자가 중국글이라는 오해도 이런 기초적인 부분이 명확히 정리되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명칭 표기는 ‘漢字’이다. 이 때 쓰이는 ‘漢’자가 한고조 유방이 항우와 싸워 이겨 세운 나라인 ‘漢’이라는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漢字’가 ‘漢’을 ‘중국’이라고 보아 중국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이해가 부족한 때문이지 실상은 전혀 다르다.
만약에 한자의 표기를 ‘漢字’가 아닌 ‘桓字’ 또는 ‘韓字’라고 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부터는 한자의 표기를 한글인 ‘한자’로만 하기로 한다.
한자는 한나라가 서기 이미 2500년 전에 벌써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명칭은 ‘漢字’가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그 사용된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원시금문(金文, 원시상형체문자), 갑골문(甲骨文), 금문(殷周金文), 대전(大篆), 소전(小篆), 예서(隸書), 해서(楷書) 등 한자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명칭 가운데 우리가 지금까지 비판 없이 사용해온 ‘漢字’는 어느 것을 말하는가?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이 한자란 말인가?


*한자의 명칭과 동일한 유형의 오해를 안고 있는 명칭에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있다. 전통적으로 지나의 나라들을 그들의 역사 체계에 따라 나열해 보면, 하(夏), 은(慇), 주(周),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요(遼), 금(金), 원(元), 명(明), 청(淸),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등이다. 이들 가운데 ‘중국’이란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우리가 그토록 사대하고 떠받들던 ‘중국’은 도대체 누가 다스리는 어느 시대의 나라란 말인가? 더구나 이들 나라 가운데 은, 요, 금, 원, 청 등의 나라들은 소위 ‘한족’과는 다른 민족이 중원을 정복하고 세운 나라들이니 이 나라들을 제외하면 지나의 역사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중국’이라는 명칭은 그런 단순한 나라 이름이 아니다. 중국이란 전통적으로 ‘중심국’을 말한다. 고구리 때에는 고구리가 천하의 중심인 중심국 즉 중국이었다. 사실 고구리 이후로 중심국의 지위를 차지할만한 안목을 가진 인물이 없었음은 안타까운 일이나 ‘중국’이란 그런 가상의 나라이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너그러이(?) 불러주는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이라고 불러온 것이 습관이 되고 또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서 망설이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한번은 들어봄직한 ‘지나’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호칭은 ‘지나’이다. 지금의 ‘남중국해’는 ‘남지나해’였다. ‘지나’란 본 줄기가 아닌 곁 가지라는 뜻이다. 이 말이야말로 ‘한족(漢族)’의 위상에 걸맞는 적절한 표현이다. 동양에서의 역사와 문화와 사상의 본 줄기는 우리 한민족이다. 그 곁에서 가지 역할을 한 나라들이 바로 ‘지나’사람들이다.
중심국의 개념은 카톨릭의 경우에서 로마 교황청의 지위를 연상하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2)한자를 만드는 법과 한자의 3요소


한자에 대한 기초적인 편견을 버리고 한자를 다시 대하게 되면 이제 한자가 스스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우리가 남의 문자라고 방치해놓은 사이 지나인들이 밝혀논 한자 만드는 법이라고 정리해놓은 6서법을 살펴보자.
① 6서법(六書法)
6서법이란,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이미 귀에 익숙한 한자 만드는 6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6서법에서도 본체자(本體字)와 용체자(用體字)가 있는데 용체자란 본체자를 이리저리 합치고 섞어서 용도에 맞게 만들어 썼다는 것이고 본래의 글자는 본체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체자에 속하는 것은 ‘상형’과 ‘지사’자이다. 그런데 또 지사자는 상하(上下) 등과 같이 추상적 개념을 표시하는 방법이므로 이마저 제하고 나면 본래의 한자란 ‘상형문자’를 일컫는 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상형문자가 만들어지고 쓰이던 시기는 어느 때인가? 지나 역사의 체계를 세운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체제에 근거하여 말하면 소위 ‘오제본기(五帝本紀)’의 시기이다. 다시말해 ‘삼황오제’의 시기이다. 염제신농, 황제헌원, 소호금천, 정옥 고양, 제곡 고신, 요, 순, 우임금이 그들로써 동양 역사의 시작을 연 분들이다. 바로 이 시기에 문자가 만들어지고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6만여 한자의 본체자는 ‘상형자’이므로 상형자를 알면 한자의 기초는 다 파악이 되는 셈이며 그 상형자가 만들어지고 쓰인 시대는 오제본기의 시대이며 사용의 주체는 삼황오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황오제의 출신을 알면 한자는 누가 만들었는지를 쉽게 알게 되는데 삼황오제의 출신이 모두 ‘동이’족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야말로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동이족! 동이족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뿌리가 곧 동양사에 기록된 동이족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러한 사실은 은폐되거나 드러나지 않았다.


② 3요소(三要素)
한자가 3가지 요소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형(形), 음(音), 의(義)가 그것이다. 한자의 형(形)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허신의《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아야 하고 음을 탐구하기 위해서는《성류(聲類)》를, 의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13경의 하나인《이아(爾雅)》를 참고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한자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상식에 속하는 것이며 기본 과정인 것이다.
*이아라는 말은 ‘近正’의 의미로 진실에 가까이 접근한다는 뜻이고 또 ‘正’이란 도읍을 뜻한다고 이아의 풀이에서 지나인들이 설명해 놓은 것이다.
‘도읍에 가까이 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풀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5. 고대 문자는 왕실의 이름 표시로부터 시작되었다.


문자가 만들어지던 초기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읍에 가까이 가는 것이 옳은 것’이란 말들의 의미는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문자가 만들어지던 당시 최초의 문자를 쓰던 사람들은 왕실 귀족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고대 문자는 모두 왕실언어요 문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문자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고 마치 비밀취급자들이 다루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따라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저기 도읍에 사는 사람들을 따라만 가도 크게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담긴 말이 바로 ‘이아(爾雅)’라는 말이다.
‘이아(爾雅)’는 이렇듯 고대 문자의 ‘의미(意味)’를 담고 있는 책이면서도 공교롭게 고대 문자가 만들어지던 당시 아직 문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몫까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아가 완성된 것은 bc2세기 즉 한나라 초기로서, 시경, 서경 등의 고대 경전에 나타난 문자를 추려 그 글자의 뜻을 풀이한 책으로, 전통 유가의 경전인 13경 가운데서도 가장 까다롭고 난해한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6. 한자의 정체


이상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한자는 상형문자가 본래의 자원으로 이 상형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은 사마천의 사기의 체계에 의하면 삼황오제시기의 삼황오제이며 문자를 만들어 처음 사용한 곳은 바로 삼황오제의 이름자였다. 그리고 삼황오제는 동이족이며 바로 우리 한민족의 선대이므로 한자는 당연히 우리 선조들이 만든 우리 문자라는 것을 천명한다.
이제부터 한자의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람의 이름으로 쓰였으며 혈연관계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최초의 한자


이 세상에 맨 처음으로 만들어진 문자는 어떤 문자였을까? 한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답답함을 벗어날만한 충분한 소재거리가 될 것이다.
우선 해와 달과 산과 나무 등을 표현한 상형문자가 떠오를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실재로 원시 한자에 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체로 발전이란 ‘구상에서 추상으로’, ‘단순에서 복잡으로’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풀이하면 무리가 없다. 따라서 문자의 발전도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쳤으리라고 보면, 한자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역시 부수에 남아있다.
자전의 부수에 보면 기초적인 한자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이 부수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부수는 첫 1획부터 제17획까지 분류되어 있는데, 첫 1획을 보면 다음 <표1>과 같다.


< 표1>
형(形) 음(音) 의(義) 비고
一 일 하나, 한, 한번, 처음
丨 곤 가늠쇠, 뚫을, (위로그어) 정수리 신
(아래로 그어) 물러날 퇴
丶 주 점 심지, 불꽃, 불핵
丿 별 삐침 비칠의 와전, 음이 별인 것을 주목
乙 을 싹, 새, 굽다
亅 궐 갈고리



이 가운데 가장 단순한 문자는 ‘ ․ ’이다. 우리말로는 보통 ‘점 주’로 새김한다. 그러나 이 ‘ ․ ’은 ‘점 주’외에도 ‘불꽃 주’, ‘심지 주’, ‘불핵 주’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 새김을 종합하면 아마도 이 ‘ ․ ’은 하늘의 별이나 달이나 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점 하나를 찍어놓고 ‘불의 핵’이니 ‘심지’니 ‘불꽃’이니 하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하늘의 별이나 달이나 해를 제외하고는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 ․ ’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표시할 경우 ‘하늘’을 상징하는 부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丿’은 ‘삐칠 별’이라고 새김한다. 그러나 그 음이 ‘별’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이 ‘삐침’은 ‘삐침’이 아니라 ‘별이 비친다’는 뜻의 ‘비침’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乀’도 마찬가지다. ‘파임’으로 새김하는 이 문자는 ‘불’이라고 발음한다. ‘파임’은 무엇이고 ‘불’이란 음은 또 무엇인가? 조금만 깊이있게 생각하면 이 글자들은 하늘의 해나 달이나 별이 땅위로 내려 비치는 모습을 본뜬 글자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밖에도 ‘山’이나 ‘川’ 등 자연현상을 묘사한 그림 같은 글자는 이미 여러 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경남 울주의 천전리 암각화에는 많은 수의 고래를 비롯한 물고기와 고기잡는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림일 뿐이지 문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회화문자와 문자의 분별은 사실 분명한 것은 아니어서 어느 때로부터 문자로 볼것인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그림문자의 경우를 근거로 이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물 인식의 주체인 사람이 드러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주체인 인간이 드러난 최초의 문자는 무엇일까?
문자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 문자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가 역사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다.


2) 최초의 한자 ‘丨’은 사람의 첫 번째 이름자였다.


고문자학에서 드러나는 최초의 사람 이름은 ‘丨’이다. ‘丨’을 자원(字源)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문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문자는 ‘申’이며 이 ‘申’에서 ‘神’으로 발전한다. 역사상으로는 삼황오제에 속하는 ‘神農’의 이름자로 알려졌다.
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丨 → → → 神’
‘丨→ → 父’
‘丨→丫→ → 成 ’
‘丨→丫→ → 成 → 盛’
‘丨→丫→ → → 旅’
‘丨→丫→ → → 相’
‘丨→丫→ → → 取’
‘丨→△ → → → 且
‘丨→亼 → ▽,▼ →▽,▼ ++ → → 子
‘丨→亼 → ▽,▼ →▽,▼ +一++ → → 辛
‘丨→亼 → → → →白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들은 모두 신농씨와 그 후손들의 이름자로 한자가 초기에 사람의 이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한민족과 분리될 수 없는 ‘朝鮮’이라는 나라와 민족과 강역이 바로 이들 ‘丨’를 이름자로 쓴 분들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것이다.


3) 한자를 만들 사람들이 조선의 왕실귀족이었다.


‘조선(朝鮮)’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고향과도 같은 나라이며 민족이며 강역이다. 조선이란 말 속에는 이 모든 것이 통째로 담겨있다. 현재 우리의 국호는 ‘대한민국’이고 민족으로는 ‘한민족’으로 불리고 있지만 우리 누구도 스스로 ‘조선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민족’은 ‘조선인’과도 통하는 말이며 지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은 ‘조선족’으로 부른다.
이렇게 ‘조선’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제 그 불가분의 관계가 ‘朝鮮’ 속에 어떻게 용해되어 있는지 같이 살펴보자.
‘朝鮮’이란 ‘朝’와 ‘鮮’의 합체자이다. 그리고 ‘朝’는 ‘一과 丨과 日과 月’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一과 丨과 日과 月’의 의미를 알게 되면 ‘朝’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며 ‘朝’의 의미를 알면 ‘朝廷’, ‘宗廟’, ‘朝貢’ 등의 뜻을 알게 된다.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문자풀이에 들어가 보자.
‘一과 丨과 日과 月’은 고금문에서 밝혀낸 결과를 토대로 설명하면, 역사의 문을 연 신농씨로부터 신농씨의 아들 희화 주씨와 딸 뉘조 그리고 희화 주씨의 아들인 정옥 고양씨의 이름자들이다.
자 이제 어떻게 이 단순한 문자들이 동양의 역사를 시작한 인물들의 이름자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① ‘丨’


먼저 ‘丨’의 변화를 살펴 어떻게 ‘神’이 되는가를 살펴보자.
丨 → → → 神
‘丨’을 두 손으로 받들어 모시면 ‘신’이 된다. 역사의 초기 즉 상고시기에 ‘神’이란 이름자를 가진 분은 염제 신농씨 한 분 뿐이다. ‘神’의 핵심이 되는 ‘丨’은 신농씨의 부호이다. 염제 신농은 농사를 발전시켜 백성들의 ‘食’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② ‘一’
‘一’은 현재로서는 신농씨의 딸로 알려진 뉘조다. 뉘조는 누에를 치면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혔으므로 ‘누에할머니’라는 뜻으로 불린다. ‘一’은 누에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며, 누에는 뉘조의 부호이다. 우리 언어에 여성의 호칭으로 ‘누님’이란 말의 어원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③ ‘日’
염제 신농의 아들인 희화 주씨의 이름자다. 신농씨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해’로 지었다. ‘희화’라는 말도 사실은 ‘해’를 표현하는 말이며 황제가 낳은 ‘달님’과 결혼하여 마침내 ‘햇님 달님’의 신화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정옥 고양씨의 아들이다.


④ ‘月’
이 ‘月’은 많은 변화를 거친 문자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강희자전》과 《설문해자》를 통하여 이 ‘月’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月←舟← ← ←
이 변화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月 이전에는 ‘舟’였으며 이 ‘舟’의 고대어는 ‘ ’인데 이 문자는 희화주씨의 아들이며 오제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옥 고양씨의 이름자다.(전욱 고양으로 알려진 고양씨의 본래 이름은 정옥 고양이므로 이 글에서는 정옥 고양으로 호칭함)


이를 종합하여 풀이하면, ‘고양씨가 할아버지 신농과 고모인 뉘조 그리고 아버지 희화 주씨를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드린다’로 풀이된다. 이것이 ‘朝’의 문자학적 풀이이다.
따라서 ‘朝鮮’이란 정옥 고양씨가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할아버지를 모신 사당에 잔을 올리면서 개국한 나라의 이름인 것이다.
‘鮮’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인물의 이름자와 관련이 있다. 추후 살피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한다.
‘韓’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韓’은 ‘朝’의 경우와 유사한데 좌변은 동일하고 우변만 다르다. 이 또한 같은 신농씨 계열의 특정한 인물과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생략하고 후일을 기약한다.


한자가 고대인의 이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일견 엉뚱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료들이 그 의견을 뒷받침하므로 앞으로 한문에 대한 많은 부분이
다시금 재 검토와 다각적 연구가 필요하다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