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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2012년 이후 7년만에 적자를 보이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해외 투자자금의 배당금 지급 금액의 증가로 인한 것으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으나,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수출 감소에 미중 패권 분쟁으로 인해 한국이 입을 타격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국회에서는 '미중 패권 전쟁과 동북아의 미래'라는 주제로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의 초청 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그의 저서 ‘미중전쟁의 승자,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를 기초한 내용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보다 큰 패권전쟁 관점에서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강연에서 "미국의 의도를 확인한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회피한 채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화, 미국의 자본파 회유 등을 통해 장기적인 게임을 준비하고 있으며, 5년 정도 견디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며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 모두 만족시킬 수 없으며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국익에 따라 새롭게 관계 설정을 한 뒤 이를 과감히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히 무역 협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중 패권전쟁으로 이어지며, 그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이 센터장은 왜 미중 갈등이 구조적 단계로 들어섰는지, 왜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 쉽게 양보할 수 없는지, 왜 싸우면 둘 다 손해인 줄 알면서도 무역전쟁은 지속될 것인지, 왜 무역전쟁은 봉합을 한 듯하다가 다시 악화되고 다시 봉합, 그리고 다시 악화를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미중 관계가 하향평준화의 낙하 포물선을 그리면서 점진적으로 악화될 것인지를 설명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진핑이란 중국 국가주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가 시진핑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기존 중국 지도자들과 차원이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정말 마음속으로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하고 그리고 '중국몽'이라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고 구체적으로는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그가 말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2050년까지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018년 10월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미국 안에 영향력을 심어 중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사회적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중국이 미국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무려 40분간의 연설을 오직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 할애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비판했다. 펜스 연설은 준비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각 부처 간 광범위한 조율이 있었고, 이 연설로 인해 미중 무역협상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한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심지어 미중 관계의 변곡점으로 보기도 한다. 즉, 미중 관계는 펜스 연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미국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본다. 첫번째 부류는 미국의 보수층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로서, 이들은 중국이 미국 다음의 세계 2위라는 이유만으로도 미국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설득하거나 회유할 공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런 매파들이 트럼프 주위를 포진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두번째 부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대중국 정서를 대표하는 자유파로,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2위에 올라선 것은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가 이렇게 커졌고 중요한 국가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민주당 집권 시절 빌 클린턴 정부가 중국에 무역 최혜국 대우를 주고 중국의 WTO 가입 등 중국 경제 부상에 큰 기여를 했음에도, 여전히 오늘날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을 못 참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실망과 분노다.
세번째 부류로는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본파류, 미국에서 가장 실용적이라고 중국이 판단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판알을 튕겨 보니 전체적으로 여전히 중국과 비즈니스를 아예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수지가 낫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선 자본파와 연계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또한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말 그대로 미국을 빼고 글로벌화를 게속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미국을 뺀 세계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고생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중국편이라는 것이다. 약 5년 동안은 중국이 조금 힘들겠지만 중국은 살아남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중국은 세계 1위 미국과 무역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았으니 앞으로 더욱 빨리 미국과 대등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미국에 비해 아직까지는 절대적으로 열세인 군사력이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전면적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중국 국무원 판공실은 6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 발효 이튿날인 지난 2일 '중미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백서는 "지난해 2월 무역협상이 시작된 이후 많은 진전이 있었고 대부분 내용에 합의를 이뤘지만, 미국이 여러 차례 공동 인식에 반하는 태도로 협상을 깨뜨렸다"면서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그러나 미국 측은 양국이 수개월 동안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여러 중요한 문제에 합의했으나 '마지막 핵심 이슈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중국 측이 기존에 합의한 조항에 대해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입장 후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기존에 발표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협상 내내 자신들은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으나 중국이 이미 합의한 중요한 문제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 센터장은 현재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서 지은이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히 무역분쟁이 아니라 미래 패권경쟁이라면 이것을 더욱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둘째, 미중 패권 싸움이라면 이는 단기적인 과정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갈등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될 때 나올 수 있는 지정학 지경학적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요청으로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한 캐나다가 중국으로부터 '즉시 석방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력한 반발을 산 데서 볼 수 있듯이 미중 사이의 갈등에 제 3국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런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국이 미국을 선택하면 중국의 미움을 살 것이고, 중국을 선택하면 미국의 미움을 살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양쪽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펠레폰네소스 전쟁 때처럼 유사 이래 강대국들은 중간에 위치한 국가들에 선택을 강조하는 오랜 버릇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이 센터장은 지적한다.
더욱이 '미중이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서로 싸우면 결국 다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 타협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관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기 때문에 이런 관점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미중 모두를 선택하고 싶지만 선택권은 없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선택을 하고 싶지 않지만 기권의 권리도 없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등을 비롯하여 이미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준 '전과'가 있다. 결국 한국의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는 없다. 오직 차선책만 존재할 뿐이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 그렇게 할 것인지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때 가장 우선적 기준은 국익인데 여기서도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현 시점에서 한국 국가적 우선순위가 북핵 문제 해결이라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느 국가가 북핵 문제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미중이 서로 협력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미중 사이의 한 국가를 북핵 문제 해결의 주 협력 국가로 삼고, 다른 한 국가는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 훼방의 리스크를 줄여가야 한다. 국가적으로 위중한 상황에선 안보와 경제 사이에서도 경중을 다시금 따져보고 다시금 선택을 해야 한다.
국제 사회도 차등적 관계다. 동맹이 있고 전략적 파트너도 있고 동반자도 있다. 심지어 북중 관계를 규정하는 관계인 전통적 우호관계라는 것도 있다.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기준을 설정하고 한국을 대하고 있다. 한국도 국제 사회의 이러한 룰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이 센터장은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