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여지없이 퀸사이(Quinsai)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도시이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中)
경제·군사 압도한 송나라
몽골 등 이민족에 끌려다녀
도학 정치가들의 발목 잡기
산업혁명 목전에서 내리막
퀸사이는 지금의 중국 항저우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방문하기 30년 전 남송의 수도로서 인구 100만이 살던 대도시였습니다.
14세기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발달상에 감탄했습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상업이 가장 발달한 베네치아 출신이었음에도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훨씬 높은 단계에 도달한 선진국이었습니다.
세계사의 미스터리 송나라
송나라는 역사학계에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불가사의한 왕조입니다.
송은 원(몽골)·금(여진)·요(거란) 등에 시달리며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국가의 대명사 같은 존재죠.
세계사의 미스터리 송나라
송나라는 역사학계에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불가사의한 왕조입니다.
송은 원(몽골)·금(여진)·요(거란) 등에 시달리며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국가의 대명사 같은 존재죠.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뜻 이해되질 않습니다.
금나라에 의해 무너지기 전인 북송 시대만 해도 송나라의 인구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1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덕분에 상비군만 100만 명 이상을 유지했죠. 당대 세계에서 어깨를 겨눌 상대가 없는 대국임이 분명했습니다.
반면 송을 들들 볶았던 주변국은 어땠을까요.
반면 송을 들들 볶았던 주변국은 어땠을까요.
요나라의 정예병은 10만 명이었고, 북송이 멸망했던 ‘정강의 변’ 사건 당시 수도를 포위했던 금나라 군사는
6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력이 가장 강력했을 때 전체 인구가 약 100만~2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송나라의 5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거죠.
이런 압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국이 건국 시기부터 일방적으로 주변 소국들에게 질질 끌려다닌 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산업발달로 풍요로운 경제 구가
그런데 학자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 것은 군사력보다 경제 분야입니다.
산업발달로 풍요로운 경제 구가
그런데 학자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 것은 군사력보다 경제 분야입니다.
앞서 소개한 마르코 폴로의 격찬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송나라의 산업 발전은 당대 유럽 어느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가령 1078년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2만5000t이었는데,
이는 1788년 영국 산업혁명 당시 철 생산량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송대에는 철을 단련하는 용광로와 수력 방직기, 화약과 강노, 물시계 등이 발명됐고,
송대에는 철을 단련하는 용광로와 수력 방직기, 화약과 강노, 물시계 등이 발명됐고,
건축에 아치형 다리와 받침대가 쓰였습니다.
조선업이나 항해술도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나침반과 수력 터빈을 사용했죠.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남 개발이었습니다. 송대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이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남 개발이었습니다. 송대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위에서 언급한 수차의 개발로 계단식 논을 통한 쌀의 집약적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
잉여 식량이 생산되자 상업이 발달했고, 이와 더불어 운송, 숙박 등 서비스업 등이 함께 발달한 거죠.
지폐와 어음도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지폐와 어음도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옥스포드 너필드 컬리지의 스티븐 브로드베리 교수가 2017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송나라는 1020년에 1인당 GDP가 1000달러(1990년 가치 기준)를 돌파했습니다.
영국(잉글랜드)이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로부터 400년 가량이 지난 1400년대부터입니다.
이때문에 많은 서양 학자들은 송나라가 왜 산업혁명 목전까지 가고도,
이때문에 많은 서양 학자들은 송나라가 왜 산업혁명 목전까지 가고도,
결국 도달하지 못했는지 무척 궁금해했습니다.
영국보다 약 500년 앞선 이때 산업혁명을 시작했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을 테니까요.
과연 무엇이 송나라의 산업혁명 진입을 막았을까요?
“법률이 재부(財富)를 방해하는 나라”
“중국의 법률 제도 가운데 백성들의 재부 증가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부러워한 지 약 500년 뒤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법률이 재부(財富)를 방해하는 나라”
“중국의 법률 제도 가운데 백성들의 재부 증가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부러워한 지 약 500년 뒤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중국이 산업혁명에 진입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춘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중국이 500년 전에는 대단히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후 흐름을 지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그렇지 못한 중국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중국은 사법정책의 집행에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결과, 성장 잠재력을 잃고 정체되고 말았다.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그렇지 못한 중국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중국은 사법정책의 집행에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결과, 성장 잠재력을 잃고 정체되고 말았다.
국민들이 재산의 소유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계약이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지불할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채무를 변제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상업과 제조업이 장기적으로 번성한다는 일은 거의 발생할 수 없다.”
“영국에서 선진적으로 상업의 자유와 형평성 있는 사법 집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영국에서 선진적으로 상업의 자유와 형평성 있는 사법 집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 경제 주체들에 의한 근면과 생산적 자원개발 노력을 자극할 수 있었으며,
이 점이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의 토대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