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장수기업에서 배우는 천년의 슬기
일본은 1000년 이상 된 기업만 해도 20여 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기업 국가다. 그렇다면 왜 이웃 일본에는 천년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가.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경영사학회에서는 일본의 오사카, 교토, 나라 등지에 있는 천년 장수기업들을 찾아가봤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회사인 교토의 이케노보가도카이(池坊華道會)다. 일본에서 꽃꽂이가 오랜 기간 발전해온 과정을 이곳 육각당에 있는 박물관에서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538년 불교가 한국에서 전래된 이후 제단에 꽃을 놓는 관습에서 꽃꽂이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꽃꽂이의 종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만큼 이케노보는 성업 중이었다.
한편 교토에 있는 불교 용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다나카이가 불구점(田中伊雅佛具店)은 업력이 무려 1133년이나 되는 장수기업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건립된 사찰들의 불교 용품을 제작해 납품해오고 있다. 이치화(一和)로 불리는 일본 전통과자 생산·판매 업체인 이치몬지야 와스케(一文字屋和輔)는 올해로 1018년이 됐다.
우리는 일본의 천년기업을 둘러보며 나름대로 몇 가지 슬기를 배울 수 있었다. 첫째,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사회적 직무의 차이일 뿐으로 인간 가치에는 상하 귀천이 없다는 사회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와는 달리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천대받지 않고 묵묵히 종사할 수 있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에 장수기업이 많아 보인다.
둘째, 독특한 가계제도가 정착돼 있다. 일본에는 오래전부터 양자나 데릴사위(초서·招壻)를 통해 가계를 이어 가는 전통이 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성을 데려다 기업을 맡기는 경우인데, 남아 존중에 익숙한 우리와는 달리 열린 사고를 갖고 능력 기반의 혈연 승계를 통해 가업을 승계하도록 했기에 오늘날의 천년기업이 가능했다고 본다.
셋째, 고객 만족과 신용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일본의 천년기업들을 보니 우리 회사에 맡기면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도록 평소에 고객 만족과 신용에 온갖 신경을 쓴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항상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며 믿을 수 있도록 신용을 최우선으로 삼는 신뢰경영을 해오고 있었다.
넷째, 장인들은 전통의 기술을 후세에 전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철저한 도제훈련을 통해 기술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아울러 기술개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들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장성보다는 안정성 전략을 펴오고 있었다. 오사카 상인들은 "장사와 병풍은 지나치게 크게 벌이면 넘어지기 쉽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일본 장수기업의 지혜는 우리나라 장수기업 육성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국경영사학회에서는 천년 장수기업을 키워가기 위해 일본에 이어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 장수기업의 DNA도 계속해서 찾아보고자 한다.
[박성수 광주전남연구원장·경영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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