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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사회적 시장경제'의 효용/김뢍식 전국무총리

새밀 2018. 9. 7. 16:50

獨 '사회적 시장경제'의 효용

  • 입력 :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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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잘 정비된 법·제도적 시스템과 건전한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발전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를 생각해보면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정치는 분권과 협치, 경제는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는 통합과 연대, 문화는 깊이와 다양성 등을 특장으로 하여 발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사회적 시장경제야말로 오늘의 독일 번영과 안정을 가져 온 핵심입니다.
독일 헌법인 기본법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직접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에 대하여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이미 독일의 정치와 사회를 관통하는 초월적 규범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는 수요와 공급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되, 여기에 사회보장 조치와 사회적 연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나 정책 등의 사회적 요소를 가미한 개념입니다. 즉 시장에서 완전한 자유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기본 질서를 세우고 관리하지만 그에 따른 빈부격차 증대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과 조정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뮐러 아르마크 교수는 1946년 저서 `경제 조종과 시장경제(Wirtschaftlenkung und Marktwirtschaft)`를 통하여 `자유`와 `조종`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적절한 형태로 결합시켜 이를 사회적 시장경제로 표현하였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에서 14년 동안이나 경제장관을 지내고 제2대 총리를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위 이론을 `모두를 위한 번영`으로 정책화하고 시행하여 독일 번영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아무튼 사회적 시장경제는 나치의 전시계획경제를 탈피하여 시장경제로 넘어가야 하는 과정에서, 1930년대 세계경제 위기를 경험하였던 자유적 시장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바탕으로 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위와 같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창한 정치세력은 `사회`를 수식어로 달고 있는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아니라 신생 우파 정당인 기민·기사연합이었습니다. 즉 기민당은 1947년 알렌 프로그램과 1949년 뒤셀도르프강령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신질서의 내용과 목표를 자본주의적 이익과 권력 추구가 아닌 국민의 행복과 번영임을 선언하고 그 구체적 내용을 차분히 제시하였습니다. 즉 계획경제도 자유경제도 모두 거부하고 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회적 정의를 앞세우고, 완전한 자유경쟁을 보장하되 경제 주체들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오랜 전통을 가진 사민당은 1925년 제정된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강령을 답습하며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짐짓 무시하고 `사회적`을 시장경제에 대한 장식물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선거 패배를 거쳐 1959년 고데스베르크강령을 통하여 계급정당 탈피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함으로써 두 개 거대 정당 모두 사회적 시장경제에 입각한 시장경제질서를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제 독일뿐 아니라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수용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함께 잘사는 나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였습니다. 집권이 어려워 보이던 사민당이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나아가 양대 거대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이 연정까지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통일 당시 동독인들의 자유경쟁 시장경제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통일 과정에서 경제체제의 차이로 인한 혼란을 줄이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효용성 있는 이론이자 정책이었고 독일은 이를 지혜롭게 운영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궁극적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이며 국가는 오로지 시장의 자유경쟁을 위한 질서를 만들고 시장의 심판자로서 역할하는 데 그쳐야 하며 국가의 개입으로 시장질서가 흐트러지는 일이 없어야 비로소 그 효용이 발휘될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