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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로 드러난 계층의 대물림

새밀 2019. 9. 18. 10:20

'조국 사태'로 드러난 계층의 대물림

: 2019.09.18 00:06:01          

  


조국 법무부 장관의 지명을 다루고 불거진 수많은 스캔들, `조국 사태`는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모펀드 이슈, 웅동학원 문제 등 조국 장관을 둘러싼 수많은 이슈가 빗발쳤는데, 그중에서도 이 문제를 국민적 이슈로 부상시킨 일등 공신은 단연코 그의 딸 입시를 둘러싼 스캔들이었다.

다른 수많은 이슈를 제치고 `자녀 입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입시라는 것이 한국에서 갖는 그 특수한 위상도 이유일 테고, 쟁점이 사모펀드나 사학재단보다는 직관적이고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십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진행된 거대한 변화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한국 사회의 계층화다. 혹자는 새삼스럽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부터 계층화에 대한 문제 의식은 주로 청년층을 위주로 돌고 있었다. 소위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비되는 `수저론`이 대표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수저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대체로 막연한 이야기, 실감 나지 않는 이야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미 상층의 청년과 하층의 청년은 서로가 살아가는 공간부터가 너무나 달랐고, 진지하게 마주칠 일도 없어졌기에 구체적인 문제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정치투쟁이 격화되면서, 그간 격차에 의해 차단돼 있던 `높은 곳`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났다. 설령 조 장관의 딸이 외고부터 의전원까지 쌓은 그 모든 스펙에 편법과 탈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에게는 고등학생이 논문 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마법과도 같이 들리는 이야기고,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즉, 조국 사태는 상류 중산층이 자신의 사회, 경제적 자본과 네트워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 자녀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물려주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는 이를 부모들이 `기회 사재기`를 통해 자녀들에게 `유리바닥`을 깔아준다고 표현했다.

물론 조 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측은 다른 논리를 펼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수많은 보수 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방식의 `세습` 방법론을 적극 활용했고, 어떤 면에서는 `조 장관보다 더하면 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층화라는 틀에서 보자면, `저네들도 똑같아요`라는 반박은 별 의미가 없다. 조 장관의 표현을 살짝 틀어서 말해 보자면, 개천의 가재와 붕어에게 용의 색깔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의 색깔이 무엇이든 용의 자녀는 용이 된다. 가재와 붕어가 다른 누구를 지지하든, 그들의 자녀는 가재와 붕어가 된다.
중요한 건 이 대물림이지, 용의 색깔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계층 사회`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마 그것은 `조국 사태`를 겪은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따라 달린 문제 아닐까. 백일하에 드러난 이 격차 사회의 문제가 공론화되고, 해결을 모색한다면 우리는 조국 사태를 개혁의 동력을 제공해준 중대한 변곡점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몇몇 정치인들 간 힘겨루기 수준에서 끝나버린다면, 미래에 조국 사태는 그저 한국 사회의 신분제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 해프닝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는가?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