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펴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현 한국사 교과서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법·제도 세우려 권위주의적 통치
국격 지키고 국민 정체성 확립 모색
근대인 되기 위한 한국인의 노력
일제 억압·지배 속에서도 이뤄져
상대는 악, 나는 선 ‘종족주의’ 문화
이런 상태 방치 땐 삼류 국가 전락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반일 종족주의』 또한 ‘뜨거운 감자’다. 상식과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일본의 수탈, 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학교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우선 제목부터 ‘수상’하다. 우리나라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닐까. 이영훈 교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반일 종족주의』 펴내 논란 불러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 전방부대 시찰 중인 이승만 대통령. [사진 국가기록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8/17/e2d6dd47-f1e3-4b33-8f0d-5afb900ca8e1.jpg)
1951년 8월 강원도 홍천 전방부대 시찰 중인 이승만 대통령. [사진 국가기록원]
- 질의 :독재자이자 친일 청산을 방해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이승만 박사를 NYT 부고가 민주주의자·반일주의자로 묘사했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진보 매체인 NYT의 이승만 평가는 의외다.
- 응답 :“‘독재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다. 독재자는 법을 파괴하고 사회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히틀러·스탈린·모택동·김일성 같은 사람이다. 이승만은 그와는 전혀 상이한 ‘권위주의적 통치자’다. 가부장으로서 국민의 교사로서, 권위주의적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법을 파괴하거나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그러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법과 제도를 세우기 위해서 가부장적 정치를 한 분이다. 이승만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는 후진국 사회에서 나타난 자유민주주의의 초보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질의 :보도연맹 학살사건만 봐도 이승만은 독재자 아닌가.
- 응답 :“전쟁이 터졌다. 언제든지 적과 협력할 수 있는 3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조직화해 있었다. 실제로 서울이 점령됐을 때 완장 찬 사람들이 나와 공산 통치에 협조했다. 그런 비극은 역사의 비극이다.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일 없이도 전쟁을 무사히 치르고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 질의 :보도연맹 학살사건에도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이 있을 것이다.
- 응답 :“그렇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다. 그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절한 사과에 더해 배상해야 한다. 땅속의 이승만 대통령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 질의 :‘반일주의자 이승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응답 :“이승만 박사의 지나치게 경직한 반일주의·반일정책이 여러 가지 큰 비용을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첫째, 당시 미국은 한국이 일본과 협조해 동아시아 안보 체제를 운영하기를 바랐다. 한국이 일본에 농산물·해산물을 수출하고 일본의 공산물을 수입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에 일본과 통합된 국제분업관계에서 경제를 개발하라고 계속 요구했다. 전형적인 미국식 시장주의 논리다. 이승만은 그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순응하면 한국이 일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