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의 자가 수필

대나무의 미학

새밀 2013. 2. 20. 10:05

 

대나무의 미학/미산 윤의섭

 

문인화 화폭에 묵죽으로 그려진 선현의 문화재가 많은 것은 무슨 유래일까?

대나무의 뿌리는 오래도록 땅속에서 뻗어 나가면서 뿌리를 키워 싹을 틔울 준비를 한 후에

5년이 지나야 비로소 죽순이 솟아난다고 한다. 그것은 새싹이 솟아 오를 때 양분을 충분히

주어 신속히 자라게 함이리.

모름지기 준비의 중요성을 자연은 알고 있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땅속뿌리에서 준비를 함은

배태의 보호와 보장성을 높이는 훌륭한 지혜가 아닐까? 지식 기술의 힘을 기르는 유비무환에서

인내와 기다림의 모델이 아닌가?

 

땅 위로 나온 죽순은 신속히 성장하여 일 년 만에 기성의 대와 같은 크기로 자란다고 하는데

다 자란 대는 속을 비워 대통을 이루는 곧은 줄기가 중간마다 마디를 맺어 힘을 주니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불어지지 않는 강건한 대나무 꼴을 이룬다.

현대 기하 공학적 원리로 설명하여도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곧음은 정직과 지조이니 그 형태가 너무나 뚜렷하고, 속이 비었으니 탐욕을 버리고 겸허하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창의를 담고 겸양, 배려를 담고 미지의 지식을 채울 자리로서 매우 중요한 인성이다. 

그 마디는 절개를 나타내고 강인한 힘을 주어 곧음의 격려와 자신감을 주는 느낌을 준다.

하늘을 향하여 곧게 성장하는 것은 풍진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음이다.

간결한 댓잎은 이슬이 바람에 씻겨 더욱 푸르니 사계절 푸름, 불변하는 마음은 신뢰를 나타내고

바늘 끝 잎의 예리함이 청렴, 절개를 강조하는 듯하다.

 

풍죽 風竹을 그린 이정 李은 임란 때 왜구의 칼에 팔이 떨어져 나갈 상처를 입고도 꿋꿋이

붓을 잡아 조선 최고의 대나무 화가로 우뚝 섰다. 칼날도 견뎠는데 바람이 대수이겠는가.

오만원권 화폐에 윤곽으로 그려진 풍죽도의 댓잎이 파르르 떠는 듯이 무언가 말하는 듯하다.
눈비나 바람을 맞는 대나무 그림은 흔하다. 하지만 꽃이 핀 대나무 그림은 드물다. 수십 년

지나도 꽃이 필까 말까 해서 그런가. 이유가 못내 궁금하다. 청나라 화가 정섭이 넌지시 일러준다.
'마디 하나에 또 마디 하나/ 천 개 가지에 만 개 잎이 모여도/ 내가 기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 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네'라고. 대나무는 60여 년의 긴 세월이 지난 후에 일생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한다고 하니, 그 느림의 삶, 만성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한다.


 소쇄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죽향 竹鄕의 고장 담양답게 대나무가 빽빽하다.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길,

소쇄원의 담은 담이라기보다는 그저 공간을 구분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냇물은 흐름을 변화

시키지 않고 다리를 만들어 담을 올린 것이 정겹다. 폭포 바로 옆에 있어 더운 여름, 선선한 가을께는

정자에 앉아 우렁찬 폭포소리를 들으며 겨울에는 흰 눈이 덮여 고요한 빙옥경 氷玉景을 감상할 때

어디서 일진죽풍이 홀연히 지나간다. 2015년이 되면 세계대나무박람회를 담양서 연다니 기대가 된다.